한은은 올해 금리를 결정하는 8차례의 금통위 중 지난 2월(동결)을 제외하고 7번 금리를 올리며 긴축 페달을 꾸준히 밟아왔다. 한은은 올해에만 기준금리를 2.25%포인트(연 1%→3.25%) 인상했다. 미국과의 기준금리(연 3.75~4.0%) 격차는 상단 기준 0.75%포인트다.
한은이 긴축 속도 조절에 나선 건 통화정책의 무게추가 한· 미 금리 격차와 원화가치 방어 등에서 성장둔화 등 국내 요인으로 옮겨진 결과다. 이창용 총재는 “앞으로 경기 둔화 폭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외환부문의 리스크가 완화되고 단기금융시장에서의 자금 조달이 제약되고 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레고랜드 사태에 대해 “금융시장에 불필요하고 과도한 신뢰상실이 생겨 당황스러웠다”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이날 금리 인상 등 통화정책과 배치되지 않는 선에서 CP 시장에 대한 추가 지원 가능성도 시사했다.
한은이 긴축 감속에 나선 건 경기 둔화에 대한 위기감이 깔려 있다. 한은은 이날 발표한 수정경제전망에서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8월 전망치(2.1%)보다 0.4%포인트 낮춘 1.7%로 예상했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1.8%)와 국제통화기금(IMF·2.0%)의 전망치보다 낮다.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경제성장률인 잠재성장률(2%)도 밑도는 수치다.
1%대 성장률은 충격적이다. 2%에 미치지 못하는 성장률을 기록한 건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0.7%), 세계 금융위기 때 2009년(0.8%),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5.1%), 2차 오일쇼크 때인 1980년(-1.6%) 등 4차례뿐이다.
한은은 주요 수출국의 내년 성장률을 미국 0.3%, 유럽연합 -0.2%, 중국 4.5% 등으로 전망했다. 이 총재는 “내년 성장률 하향조정 요인 대부분이 글로벌 경기 둔화폭 확대와 같은 대외요인에 기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 속 한국 경제가 한은 전망치인 1.7% 성장률을 달성하지 여부는 민간소비에 달려있다. 한은은 내년 민간소비가 올해보다 2.7% 늘어날 것으로 봤다. 올해 내내 이어진 보복소비가 내년에도 상당 부분 계속될 것이라는 게 이런 분석의 근거다.
다만 부동산 가격 하락과 대출 금리 상승 등에 따른 이자 비용 증가 등 가계가 지갑을 닫을 요인이 많다. 민간 소비마저 줄 경우 정부·기업·가계가 모두 돈 주머니를 단단히 동여맬 수 있다. 이미 정부는 내년도 예산을 올해보다 40조원 가량 줄이며 긴축 기조로 돌아섰다. 기업의 설비투자도 한은 전망대로라면 내년에는 3.1% 역성장한다.
수출이 줄고 내수까지 꺾이면 한국 경제가 기댈 곳이 없게 된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내년에는 성장률을 끌어올릴 부분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 총재는 내년 초까지 5%대의 물가상승률을 전망했다.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물가 상승) 우려도 커지게 됐다. 다만 이 총재는 “경제성장률은 하반기부터 반등할 것이고, 물가도 하반기로 들어가면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며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부르기는 과도하다”고 말했다.
경기 둔화 속에도 긴축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한은도 일단 고통스러운 긴축에 대한 결기를 다지고 있다. 이 총재는 이날 이례적으로 금통위원들이 생각하는 최종금리 수준을 공개했다.
이 총재를 제외한 6명의 금통위원의 최종 금리 전망은 연 3.25%(1명), 3.5%(3명), 3.5~3.75%(2명) 등으로 나뉘어 있다. 금통위원 중 다수는 적어도 내년 중 1차례 이상이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조기금리 인하에 대해서도 시기상조라며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최종 금리에 도달한 뒤에도 금리 인하를 위해서는 물가가 (한은의) 관리 목표(2%)로 수렴하고 있다는 증거를 확인해야 금리 인하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도 이날 “금리가 많이 올라가고 경기도 나빠져 경제 주체들의 고통이 심해지는 것은 잘 알고 있다”며 “한은도 금리를 빨리 안정화시키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