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2일 발표한 ‘3분기 가계신용(잠정)’에 따르면 3분기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870조6000억원으로 전 분기 말보다 2조2000억원 증가했다.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3년 이래 가장 큰 규모다. 가계신용은 은행이나 금융사 공적 금융기관에서 받은 가계대출과 카드 사용 금액(판매신용) 등을 포함한 가계 빚을 의미한다.
가계 빚은 전 분기보다 늘었지만, 증가 속도는 대폭 둔화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가계신용 증가율은 1.4%(25조1000억원)로 역대 최소치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가계신용 증가율은 지난해 2분기 10.5%를 기록한 뒤 5분기 연속 하락하고 있다.
특히 가계신용 중 가계대출은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3분기 기준 가계대출 잔액(1756조8000억원)은 전 분기 말보다 3000억원 줄었다. 지난 1분기(-8000억)에 이은 역대 두 번째 분기 기준 가계대출 감소다. 가계대출은 지난 2분기에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의 증가 폭이 커지며 8000억원이 늘었다.
신용대출을 포함한 기타대출의 경우 빚을 새로 내기보다 갚는 이들이 더 많았다. 3분기 기타대출 잔액은 748조9000억원으로 전 분기 말보다 6조8000억원 줄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기타대출 잔액은 3.2%(24조5000억원) 감소했다. 증감액과 증감률 모두 역대 최소를 기록했다. 기타대출은 지난해 4분기 이후 매 분기 감소하고 있다.
고금리가 이어지며 가계대출은 사상 첫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을 앞두고 있다.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지난해 말보다 3000억원 줄었다. 가계대출이 9월 말 기준으로 감소한 건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처음이다. 같은 기간 가계신용 증가액은 7조7000억원으로, 신용카드 사태가 벌어진 2003년(-1조2000억원) 이후 가장 적다.
그동안 한국의 가계 빚은 코로나19로 인한 저금리와 자산가격 상승 등이 맞물리며 폭발적으로 늘었다. 지난해 1~3분기에만 가계대출은 111조4000억원 늘었고, 같은 기간 가계신용은 116조1000억원 증가했다.
하지만 뛰는 금리로 가계의 빚 부담은 커지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은행권 가계대출 평균 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지난해 9월 연 3.18%에서 올해 9월 연 5.15%로 2%포인트 가까이 높아졌다. 한은이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서면 대출금리는 더 오를 수 있다. 가계가 갚아야 할 이자 부담이 가중되는 만큼, 대출을 쉽게 내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가계대출이 줄었는데도 가계 빚이 늘어난 건 신용카드 사용 등을 통한 소비 증가 때문이다. 3분기 판매신용 잔액(113조8000억원) 전분기 말보다 2조5000억원 늘었다. 1년 전보다는 13조2000억원 늘며 증가 폭으로는 역대 최대치였다.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로 소비 증가세가 이어진 영향이다. 전분기 대비 민간소비 증감률은 지난 1분기 뒷걸음질(-0.5%)한 뒤 2분기(2.9%)와 3분기(1.9%) 등 계속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