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희생자 명단 공개, 윤리적·법적 책임 져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2022.11.16 00:09

수정 2022.11.16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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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 꽃들이 놓여 있다. 국가애도 기간은 지난 5일 종료됐다. 연합뉴스

유족 동의 구하지 않고 일방적 강행

참사 정쟁화에 편승한 폭력적 행위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8명 중 155명의 실명을 홈페이지에 지난 14일 공개했던 ‘시민언론 민들레’가 어제 20여 명의 이름을 삭제했다. 유족들의 허락조차 받지 않고 올렸다가 이들의 항의를 받아서다. 더구나 외교부에 따르면 외국인 사망자 26명 중 1명을 제외한 거의 모든 유족이 이름 공개를 원치 않았고, 일부 주한 대사관은 항의의 뜻을 전했다.
 
민들레 측은 “진정한 애도와 책임 규명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판단한다”고 공개 취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이름만 공개하긴 했지만, 유가족협의체가 구성되지 않아 유족들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은 깊이 양해를 구한다”고 했다. 완전히 앞뒤가 바뀐 처신이다. 추모 미사에서 희생자 이름을 불러 사실상 명단을 공개한 김영식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신부는 ‘부적절하고, 법적 논란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김어준의 뉴스공장)고 말했다. 유족들 의사와 상관없이 계속하겠다는 취지다.
 
명단 공개의 가장 큰 문제는 희생자와 유족들에 대한 ‘2차 가해’다. 이름만 알렸을 뿐 다른 신상을 특정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미 주변에서는 희생자들을 대부분 알고 있다. 독특한 이름으로 인해 바로 누군지 파악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민들레 측은 “외국 언론들의 경우 실명과 신상까지 공개했다”고 주장하지만, 관련인들 동의 없이 보도한 사례가 있는지 의문이다. 국가인권위원장이 유감을 표하고, 언론노조도 재난보도준칙을 어겼다고 비판했다.
 
법적 책임도 명확히 져야 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유족에 대한 모욕·조롱을 부르는 ‘2차 좌표 찍기’가 될 수 있다”며 처벌 가능성을 시사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유가족 동의 없는 공개는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그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권리 침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민들레 등이 확보한 희생자 명단이 어떤 경로를 통해 유출됐느냐도 규명해야 한다. 정보보호법 위반에 따른 처벌이 가능한 사안이다.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명예훼손은 물론 유가족이 겪는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 책임도 있다. 이와 관련한 고발이 시작됐다. 검찰과 경찰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2차 가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번 사태는 참사마저 정략적으로 활용하려는 정치권의 움직임에 편승한 폭력적 행위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명단과 영정 공개를 주장해 왔다.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전체 명단, 사진, 프로필을 확보해야 한다”는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메시지가 공개되기도 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당에서는 이를 다시 정쟁화하는 분위기다. 시시비비는 가려야 하겠지만, 고통에 힘겨워 하는 유족들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