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ㆍ중 정상회담 후 복잡해진 핵게임 셈법, 김정은의 선택은

중앙일보

입력 2022.11.15 18:02

수정 2022.11.15 18:31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중국이 북한 문제 해결에 관여하라고 압박하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핵게임 셈법이 복잡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13일 동맹국인 한·일과 6년 7개월 만에 3자 회담을 연 데 이어 14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책임 있게 행동하도록 촉구해야 한다"고 시 주석에게 직접 요구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 사이에선 김 위원장이 7차 핵실험 실행 명령을 선뜻 내릴 수 없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14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휴양지 누사두아에서 만나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 백악관은 14일 미·중 정상회담 직후 발표문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 행위에 우려를 제기하며, 국제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북한이 책임 있는 행동을 하도록 촉구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두고 외교가에선 "중국에게 북한 문제 해결에 책임감을 가지고 나서라는 주문을 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중국 측의 공식 발표문에선 양 정상 간의 북핵 관련 논의 사항이 단 한 글자도 없었다. 다만 중국 입장에선 대만·인권·경제 문제 등 국익이 걸린 이슈를 놓고 미국과 논의를 이어가야만 하기 때문에 미국의 요구를 무시하기 어려워진 상황이다.
 
미국이 중국의 역할을 강조한 배경엔 중국이 북한의 7차 핵실험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라는 판단이 자리 잡았다. 앞서 미국은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 도발 국면에서 중국에게 대북 압박을 요구했고, 직후 북한은 한동안 잠잠한 모습을 보였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할 경우 중국에게 일종의 책임론을 제기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며 "중국 입장에서도 북한의 핵실험과 같은 고강도 군사도발은 미국과 풀어야 할 현안이 가득한 상황에서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7월 한미 군사연습과 남측의 신형군사장비 도입에 반발해 신형 단거리 탄도 미사일의 '위력시위사격'을 지휘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으로서도 중국이 7차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다면 외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중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 방역 물품을 지원한 것은 물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도 최근 미사일 도발에 대한 북한 규탄성명이나 추가 대북제재가 나오지 않도록 북한의 뒷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다.
 
그렇다고 북한이 '강대강' 대결국면을 조성해 놓고 7차 핵실험이나 ICBM 시험 발사를 포기하기 힘든 측면도 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고지도자가 공식 석상에서 '핵무력의 질량적 강화'를 언급한 만큼 행동에 옮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판단에 따라 핵실험을 하거나 ICBM을 추가로 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도 "북한은 핵실험 준비를 마치고 정치적인 결정에 따라서 언제든지 감행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중국의 의중을 살피고 국제정세를 관망하면서 당분간 장고에 들어갈 수 있다는 관측을 제기한다. 북한이 7차 핵실험을 일정 기간 미룰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국가정보원이 지난 9월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이 높다고 지목했던 '10월 말∼11월 초'가 지나갔다. 국정원은 지난 5월에도 “북한의 핵실험 준비가 끝났고 타이밍만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 정보당국이 올해 두 차례 북한 핵실험 오경보를 발령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정보당국은 보수적으로 정보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지나친 게 모자란 것보다 낫다'는 정보당국의 습성 때문"이라며 "폐쇄·통제 국가인 북한에 대한 휴민트(HUMINT·인적정보)가 제한적이라 핵실험 일정을 파악하기 몹시 어렵다"고 말했다.
 
북한 관련 정보는 미국의 정찰위성과 정찰기, 무인기로부터 주로 얻는데, 이들 미국의 정보 자산은 임박 징후를 포착하지 않는 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의 북한 핵실험장을 자주 들여다보지 않는다고 한다. 평소 주요 초점을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TEL)에 맞춰놨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보당국의 의도한 전술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미 정보당국은 올해 대북 정보를 그대로 밝히는 패턴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정보당국이 미국과 공조해 북한의 동향을 낱낱이 살피고 있다는 경고를 보내는 고도의 심리적 억제(Psychological Deterrence) 전략"이라며 "실제 일정 부분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 측은 "한·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언제든 7차 핵실험을 할 수 있는 준비를 마친 것으로 평가해왔다"며 "다만 9월 28일 국회 정보위에서 7차 핵실험 시기를 확률이나 실제 가능성을 담은 의미에서 언급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국제 정세와 코로나19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것이라는 취지로 답변한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