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예영준의 시시각각

[예영준의 시시각각] 공청단 몰락이 의미하는 것

중앙일보

입력 2022.11.15 00:27

수정 2022.11.15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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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 논설위원

운동 경기의 신기록과 마찬가지로 인간 사회의 모든 관행도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숙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10년 집권한 뒤 물러나던 중국 공산당의 불문율을 지난 20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이 깬 건 지난 수년간 여러 형태의 정지작업을 통해 충분히 예고돼 오던 일이다. 오히려 놀라웠던 것은 상무위원 7명 전원을 시자쥔(習家軍)이라 불리는 직계 부하 출신이나 심복으로만 채운 사실이었다. 한두 명쯤은 비(非)시진핑 인맥을 포함시킬 것이란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상무위원 7명의 면모가 처음 공개되던 날, 내외신 기자석의 탄성이 TV 생중계로도 들릴 정도였다.
 
7명의 대열에서 빠진 사람 가운데 주목해야 할 인물은 후춘화(胡春華) 부총리다. 베이징대 수석졸업과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제1서기 등 화려한 이력의 후춘화는 40대에 상무위원 바로 아래 단계인 정치국원에 진입해 일찌감치 차기 주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런데 이번에 상무위원 승진은커녕 중앙위원으로 강등당함으로써 정치생명이 다했다.
 
후춘화의 시련은 이미 예정된 수순
1인 권력 집중은 전 세계의 리스크  
리스크의 끝이 없다는 게 더 큰 위험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롯, 제20차 공산당 당대회에서 선임된 상무위원들이 내외신 기자회견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 [AFP=연합]

왜 그에게 이런 시련이 닥친 것일까. 인민일보 등에 따르면 20차 당 대회의 인사 원칙에 ‘시진핑을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과 고도의 일치 유지’란 게 있다. 쉽게 말해 시진핑에 대한 충성심의 강도가 인사 척도였다는 것이다. 베이징 특파원 시절 취재했던 전인대 ‘개방일’ 회의 장면들이 퍼뜩 떠올랐다. ‘개방일’은 각 성·직할시별로 서너 차례 열리는 회의 가운데 한 차례는 반드시 취재진에 개방하고 질문을 받는 것을 말한다. 2017년에는 시진핑에게 핵심 호칭을 붙이는 것이 경쟁처럼 지방 서기들 사이에 펼쳐졌다. 단연 앞선 사람은 랴오닝성 서기이던 리시(李希)였다. 그는 10분 남짓한 발언 도중 ‘핵심’이란 단어를 20여 차례 언급하며 “시진핑 총서기가 당의 핵심이 된 것은 당과 민족의 최대 행운이다. 마르크스주의 정치가 중 걸출한 지력과 계략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리시는 광둥 서기를 거쳐 이번에 서열 7위의 상무위원에 발탁됐다. ‘핵심’ 호칭 붙이기 경쟁에서 유일한 예외가 바로 후춘화였다. 세세한 통계 숫자까지 원고 없이 줄줄 읊는 명석함으로 정평이 난 그가 단순한 부주의로 ‘핵심’ 호칭을 빠뜨렸을 것이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돌이켜 보니 리시와 후춘화의 엇갈린 운명은 그때 이미 정해진 것이란 생각이 든다.
 
20차 당 대회의 또 다른 키워드 중 하나는 공청단 계파(團派·퇀파이)의 몰락이다. 후춘화의 강등이 인적 청산의 끝내기 수순이라면 폐막식에서 펼쳐진 후진타오의 퇴장은 우연이든 기획이든 공청단의 몰락을 상징하는 퍼포먼스였다. 후야오방-후진타오-리커창-후춘화 등 공청단 제1서기 출신자를 중심으로 한 계보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을 충실히 이행해 온 엘리트 그룹이었다. 이들이 덩샤오핑 시대의 주축으로 활약하는 동안엔 서방과 큰 갈등을 빚지 않았다. 시진핑은 여러 면에서 공청단과 공존하기 어렵다. 시진핑을 비롯한 태자당은 자신의 부모를 포함한 혁명원로들을 공산정권의 창업주로, 공청단 엘리트들을 전문경영인쯤으로 여기는 시각이 있다. 또 공청단이 배출한 경제 전문가들의 친(親)시장 성향은 시진핑의 사회주의 이념 회귀나 공동부유 노선, 국가 주도의 경제정책과 잘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다.


이제 중국 정치를 태자당·공청단·상하이방 등의 계파로 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시진핑과 그의 친위세력만 남았기 때문이다. 세계 2위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중국의 권력이 한 개인의 손에 쥐어졌다. 그 개인이 힘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세계는 안정과 조화를 유지할 수도 있고, 반대로 전 세계가 불안과 긴장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그것이 ‘차이나 리스크’의 본질이다. 그 리스크가 5년 뒤 끝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게 더 큰 리스크다. 새로 구성된 당 지도부 명단을 아무리 살펴봐도 후계자로 볼 만한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예상한다. 포스트 시진핑은 시진핑 본인일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