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을 울고 웃게 하는 CPI는 전쟁 속에서 탄생했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 미국 조선업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군함과 화물선을 만드느라 자금이 밀려 들어오는데 물자는 턱없이 부족했다. 생필품 가격이 치솟자 ‘이 돈 받곤 못 산다’는 노동자의 불만이 컸다. 적정 임금을 책정하기 위해 노동통계국은 92개 산업 도시에서 한 가족이 먹고사는 데 필요한 돈이 얼마인지 품목별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2년 준비 후 1919년 첫 CPI가 공표됐다. 통계청이 아닌 노동통계국이 지금도 CPI 발표를 맡고 있는 건 이런 역사 때문이다.
물가가 오르면 금리도 오른다. ‘해는 동쪽에서 뜬다’처럼 당연한 명제 같지만 사실 발명에 가깝다. CPI 자체가 원래 통화정책 지표가 아닌 임금 책정 기준이었다. 물가 안정 수단으로 금리를 활용한 역사도 30~40년밖에 안 된다.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인물이 바로 ‘인플레 파이터’ 폴 볼커 전 미 Fed 의장이다. 베트남 전쟁과 오일쇼크가 불러온 1970~80년대 초고물가 위기를 연 20% 이르는 금리 처방으로 해결한 인물이다.
주춤한 물가에 시장이 환호하고 있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 7% 물가 상승률은 Fed 목표(2%)와 여전히 거리가 멀다. 중앙은행이 치열하게 물가와의 전쟁을 벌이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방치된 고물가의 끝은 언제나 극심한 경기 침체였기 때문이다. Fed도 경험으로 안다. 금리 인상 폭이 줄고 인하 시기가 빨라진다는 건 순전히 시장의 기대다. 현 Fed 의장인 제롬 파월은 “숫자를 말하거나 날짜를 말해라. 둘 중 하나만 해야지 둘 다 해선 안 된다”는 볼커의 격언을 충실히 지키는 중이다.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