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분수대] 환승연애

중앙일보

입력 2022.11.14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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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선 K엔터팀 팀장

제목에 영감을 주었을 듯한 ‘환승이별’은 별로 좋은 뜻이 아니었다. A가 B랑 사귀면서 C와의 관계를 열어둔 결말로 방치하다 이별이 임박하면 상대를 C로 교체한다. 양다리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연애 공백이 전혀 없다는 장점이 있다. ‘디졸브(Dissolve) 이별’도 비슷하게 쓰인다. 영화 속 장면 전환 같은 이별과 만남이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에서 첫 방송부터 화제성을 독식한 ‘환승연애2’의 성공으로 이 용어는 긍정적 힘을 얻은 듯하다. 환승이 아름다울 수도 있단다. 이에 더해 안 그래도 쏟아지던 연애 예능(짝짓기 예능) 실험도 당분간 이어지게 됐다.
 
국내에선 ‘사랑의 스튜디오’(MBC·1994~2001)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유구한 역사의 이 장르에서 새로운 게 나올 것이 있을까 싶을 때, 허를 찌르는 설정이 등장한다. 서로 잘 알아가라며 남녀를 쇠사슬로 묶어둔다거나(쿠팡플레이 ‘체인리액션’), 함께 밤 시간을 보내고 시작하는(웨이브 ‘잠만 자는 사이’) 자극적 설정으로 구조화한 데이팅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다. 선정성 논란이 있지만, 성별 구분 없이 다 벗은 몸을 보고 상대를 고르라는 해외 프로그램(영국 채널4 ‘네이키드 어트랙션’)에 비하면 아직은 얌전한 편이다. 한국 데이팅 프로그램에선 여전히 여성 출연자가 남성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고 패널 모두 패닉에 빠진다.
 
연애 예능이 많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선명하다. 제작비가 상대적으로 적게 들고 화제성이 높다. 콘텐트 사업자가 꼭 붙잡아야 할 20·30세대가 집착하는 장르다. 인성과 사생활을 까발려야 하는 이 상황에 기꺼이 나서는 출연자의 목표도 분명하다. 이들도 열심히 일하러 나온다. 최근의 연애 예능 출연자의 절대다수가 이름을 알릴 필요가 있는 직종 종사자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출연료가 상당한 목돈인 것에 더해, 현재 사회에서 가장 큰 자산인 영향력을 단숨에 얻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사랑을 찾는 마음이 가짜라고 할 수는 없다. 월급 받으러 출근하지만, 하다 보면 일을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진심과 비즈니스가 섞이는 것이야말로 짝짓기 예능의 영원한 DNA, 그 복잡한 감정을 발라내며 보는 것이 이 장르 시청자가 얻을 수 있는 진짜 재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