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낸스 "인수 철회"에 "구원자 없다"…FTX, 파산 벼랑 끝으로

중앙일보

입력 2022.11.10 18:12

수정 2022.11.10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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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가상화폐 거래소 FTX의 유동성 위기 여파로 10일 국내 가상화폐 시장에서도 급락세가 지속된 가운데 10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에 설치된 태블릿에 FTX토큰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암호화폐 시장이 또다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가 유동성 위기에 빠진 암호화폐 거래소 FTX 인수 계획을 하루 만에 철회하면서다. FTX는 파산 위기에 처했다. 10일 비트코인 가격은 인수 계획을 밝히기 전인 8일보다 20%가량 하락하기도 했다. 시장은 FTX 사태가 '리먼 브러더스' 사태처럼 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킬 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바이낸스는 9일(현지시간) 트위터에 “FTX에 유동성을 지원하려 했지만 기업 실사를 해보니 이 문제는 우리가 도울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며 “FTX 인수를 추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전날 바이낸스의 자오창펑 최고경영자(CEO)는 "FTX를 인수하고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기로 하는 구속력 없는 의향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바이낸스가 하루 만에 발을 빼면서 FTX는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블룸버그는 10일 “80억 달러(약 11조원)를 제공할 구원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FTX는 결국 파산 신청을 하게 될 것”며 “FTX는 재정적인 부담 외에도 (고객 자금을 잘못 취급한 혐의로)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조사를 받고 있어 문제 해결이 어려울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 때 거래 규모로 세계 2위권에 이름을 올렸던 거물 암호화폐 거래소 FTX가 순식간에 파산 위기에 몰린 건 자체 발행 코인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몸집을 키운 취약한 구조가 드러나면서다. FTX는 FTT라는 토큰을 발행해 자매 회사인 알라메다 리서치에 FTT를 빌려줬다.  


알라메다 리서치는 FTX에서 빌린 FTT를 담보로 달러를 외부에서 빌린 뒤 그 돈을 FTX 거래소에 입금했다. 이 달러로 FTT 토큰을 사들이며 FTT의 가격을 띄웠고 알라메다 리서치는 이를 통해 얻은 차익으로 더 많은 대출과 투자금을 확보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FTT 가격이 폭락하면 FTX와 알라메다가 서로 '죽음의 소용돌이'를 일으켜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지난 5월 발생한 루나 대폭락 사태에서 루나와 테라의 관계와 유사하다.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지난 2일 암호화폐 전문매체 코인데스크가 “알라메다의 비공개 대차대조표를 입수해 확인해보니 알라메다의 자산 대부분은 FTT로 이뤄져 있다”며 “이를 담보로 확보한 달러로 FTX가 FTT를 발행하면 알라메다가 매입하는 비정상적인 관계”라고 공개하면서다.   
 
여기에 경쟁사의 취약점을 알게 된 바이낸스의 자오창펑 CEO가 7일 트위터에서 “바이낸스가 보유한 FTT를 전부 처분하겠다”고 공개 선언하면서 FTX의 위기에 기름을 부었다.
 
에스와르 프라사드 코넬대 경제학과 교수는 “FTX 사태는 암호화폐 업계 전반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암호화폐 시장에선 규모가 상당히 크고 재정적으로 문제가 없어 보이는 업체도 문제의 조짐만으로도 흔들리고 무너질 수 있단 것으로 판명됐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9일(현지시간) “자유롭고 규제가 거의 없는 암호화폐 산업의 어떤 회사도 변동성을 겪을 때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이 사태가 '리먼 브러더스 사태'와 비슷한 위기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빅쇼트’의 실제 주인공 마이클 버리는 이날 트위터에 “암호화폐 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레버리지를 지나치게 키운 것”이라며 “그동안 이 부분을 여러 번 경고했지만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나를 겁쟁이로 치부하며 무시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FTX의 파산 위기에 암호화폐 시장은 요동쳤다.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코인 매도에 나서면서다. 코인마켓캡 기준 비트코인 가격은 10일 오전 8시 1만5700 달러까지 떨어진 뒤, 이날 오후 1만6000 달러대를 간신히 회복했다. 8일 정오까지만 해도 2만 달러를 웃돌았지만 이틀 사이에 20%가 빠졌다.  
 

JP모건의 암호화폐 담당자 니콜라오스 파니거트초글로는 “FTX발 위기로 비트코인 값이 1만3000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며 “암호화폐를 담보로 대출받은 투자자는 지금 수많은 마진콜을 받고 청산이 진행 중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사태가 FTX의 파산으로 끝나고 연쇄 도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다는 시각도 있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은 “FTX는 규모가 큰 거래소지만 FTT는 과거 루나·테라처럼 시장에서 거래량이 많은 토큰은 아니기 때문에 이번 사태는 국지적 사건일 것”이라며 “이번에 급락한 암호화폐 가격 회복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악순환으로 이어지진 않을 듯하다”고 말했다.
 
한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FTX 파산을 넘어 추가 악재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란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암호화폐 가격이 10일 오후부터 소폭 반등했다”며 “일부 투자자들은 공포로 급락한 암호화폐를 저가에 매수할 기회라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