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리움미술관의 기획전 ‘여월지항(如月之缸):박영숙 백자’전(20일까지)을 두고 미술계에서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다. "현대미술 매체로서 백자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했다"는 긍정론과, "과한 연출로 정작 백자 고유의 아름다움이 묻혔다"는 혹평이 맞서고 있다.
리움 '박영숙 백자'전 논란
백자에 LED 형광등 그림자
"현대미술 매체 가능성 탐색" vs
"달항아리 조형미 안보여" 의견
전시 디자인 갈수록 중요해져
"리움 브랜드에 맞는지 의문"도
새로운 시도 vs 과한 욕심
문제는 반사광이다. 일반적으로 백자는 은은한 조명 아래 전시됐다. '자연스러움' '넉넉함' '푸근함' 등 달항아리의 매력을 차분하게 드러내기 위해 쨍한 조명보다는 PVC나 한지 등으로 광원을 가려 눈부심을 덜어주는 방식이 선호됐다. 지난해 2월 부산 조현화랑에서 열린 권대섭 도예가의 달항아리도 한지 조명 아래 전시됐다.
조 수석 연구원은 "그동안 백자는 전통 공예 작품으로만 보여 왔다"며 "이번엔 그것을 넘어서 작품과 공간을 하나의 거대한 설치작품으로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 디자인엔 정구호 리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 수석 연구원, 박 도예가가 참여했다. 전시 초반 "지나치게 눈이 부시다"는 지적이 일자 밝기를 낮춘 게 현재 상태다.
백자를 빽빽하게 붙여 세운 것도 지적됐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달항아리가 정작 거의 겹치다시피 진열돼 하나하나 감상하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시 전문 디자이너는 "그동안 도자를 개별 작품으로만 보여준 관습을 탈피하기 위해 파격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며 '도전'에 점수를 줬다. 그는 "전시가 관람객에게 이색적인 경험을 제공한 점에선 성공했다"면서 "그러나 튀어 보이는 것 이상 얻어낸 것이 무엇인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달항아리 조형미는 내려놨다?
중요해지는 전시 공간
특히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은 고정관념을 탈피한 공간 디자인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 전시실은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을 나란히 전시하며 "흙벽과 기울어진 벽면과 경사가 있는 바닥, 조명으로 반가사유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경험을 제공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이 공간을 디자인한 최욱 건축가는 "1m도 채 안 되는 반가사유상을 어떤 높이에서 보여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오묘한 불상 표정에 관람객 시선이 머물게 하고, 뒤의 관람객을 덜 보이게 할 것인가 등을 놓고 고민했다"고 디자인 과정을 설명했다.
김용주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디자이너는 "전시 디자인은 작품을 마주한 관람객이 좀더 풍부한 환경에서 감응할 수 있게 돕는 일"이라며 "관람객이 작품 앞에 오래 머물며 깊이 감상하게 하는 일은 항상 큰 도전"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미술계에서 리움은 공간, 작품, 디자인에서 최고 수준을 뜻해왔다. 그러나 관람객의 눈높이도 높아졌다. 한 공공 미술관 큐레이터는 "그동안 리움은 미술관과 박물관 큐레이터들에게 리움은 많은 영감을 주던 곳이었다"며 "앞으로도 그럴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