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이 조기상환을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한 건 금융시장에 미친 여파가 당초 예상보다 커지면서다. 조기상환 연기 공시 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한국 채권에 대한 투자심리가 얼어붙으며 흥국생명뿐 아니라 국내 금융사가 발행한 후순위채의 가격이 급락했다.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 불발이 2009년 우리은행의 후순위채가 마지막인 만큼 시장의 의구심이 그만큼 컸던 여파다.
흥국생명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조기상환 연기에 따른 금융시장 혼란을 잠재우기 위한 결정”이라며 “당사의 기존 결정으로 야기한 금융시장의 혼란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지난 주말 이후 각종 회의를 거쳐 조기상환을 일정대로 진행하는 방안을 흥국생명 등과 조율해 왔다고 한다. 해외 채권시장에서 한국물에 대한 신뢰의 위기가 신종자본증권 등 후순위채뿐 아니라 선순위채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흥국생명은 조기상환을 위한 자금 5600억원을 자체 자금과 환매조건부채권(RP) 발행 등으로 마련하기로 했다. 흥국생명 고위관계자는 "조기상환 자금 대부분은 자체 보유 자금으로 마련할 계획"이라며 "그룹 차원에서 증자 등의 후속조치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흥국생명 측은 “(모기업인) 태광그룹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자본확충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흥국생명이 발행하는 RP는 시중은행과 보험사 등이 매입하기로 했다. RP는 발행자가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되사는 조건으로 발행하는 채권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재 RP시장은 유동성 등의 문제가 없는 만큼 보험사 등이 이를 매입하는 데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RBC는 보험사가 각종 리스크로 입을 수 있는 손실금액(요구자본)과 이런 손실금액에 대처할 수 있는 자본(가용자본)의 비율이다. 다만 최근 채권 가격 급락 등으로 지난 9월 말 기준 RBC 비율은 더 악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흥국생명 입장에서는 추가 자본 확충이 필수인 셈이다. 지난 6월 말 기준 흥국생명의 자기 자본은 1조9718억원 규모다.
흥국생명이 신종자본증권 조기 상환에 나서며 당장 급한 불을 끄게 됐지만 흥국생명과 금융당국 모두 불필요한 혼란만 키웠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됐다. 게다가 이미 시장이 신뢰가 훼손된 만큼 한국물에 대한 투자 수요가 회복될지도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