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시장이 경색되며 기업들이 자금 조달을 위해 만기 1년 이상의 장기 CP로 눈을 돌리고 있다. CP는 원래 만기 1년 이하 단기 채권을 의미하지만, 자본시장법에선 특별한 만기 규제가 없다. 그러다 보니 길게는 10년 만기 CP도 원론적으로는 발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기업마저 회사채 대신 장기 CP로 우회하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 채권시장 전반을 위축시켜 신용도가 낮은 기업의 자금난이 더 심화할 수 있는 데다 '규제 공백'으로 투자자 보호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다.
장기 CP, 전체 CP 발행액의 30% 차지
기업의 장기 CP 발행이 늘어난 이유는 회사채보다 발행 규제가 까다롭지 않으면서 장기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서다. 투자자 50인 미만인 경우에는 유가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고, 수요예측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돼 미매각 위험이 없다. 장기 자금을 조달하는 데도 신용평가사로부터 받는 신용등급은 1년 기준으로 매겨진다는 점도 발행기업 입장에선 이점이다. 10년 뒤까지 내다보면 채무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기업도, CP의 경우 ‘1년 뒤 상환 능력’만을 평가해 우량 등급을 받을 수 있어서다.
투자자는 금리 매력 높아 투자
기업의 장기 자금 조달 수요까지 CP로 몰리면서 최근 CP 금리는 급등하고 있다. 본드웹에 따르면 지난 2일 CP(91일물) 금리는 4.71%로 지난 1년 새 3.8배 뛰었다. 이러다 보니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은 회사채는 물론 CP로도 자금 조달을 하기 어려워졌다.
"규제 차익 얻는 장기 CP, 채권시장 구축 우려"
안영복 나이스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장은 “장기 CP는 펀드 형태로 판매되기 때문에 수익률만 보고 투자한 금융소비자들이 ‘적절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투자 손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1년 기준 신용등급에 증권신고서 제출을 면제받고 사실상 회사채와 같은 기능을 하는 증권이 있다는 것 자체가 기형적”이라며 “CP의 만기는 단기 자금 조달 취지에 맞춰 1년 이내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