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디즈니+가 출시한 미국 퀴어 영화 ‘파이어 아일랜드’는 여름을 맞아 게이 친구들과 파이어 아일랜드에 놀러간 한국계 간호사 노아(조엘 킴 부스터)가 『오만과 편견』의 무뚝뚝한 마크 다아시를 똑 닮은 변호사 윌(콘래드 리카모라)과 연애에 휘말리는 내용.
『오만과 편견』의 자매 주인공을 친자매처럼 끈끈한 게이 친구들로 바꾸고, 자매의 엄마는 게이 친구들의 대모 격인 레즈비언 캐릭터로 비틀었다. 한국계 희극인 겸 작가·싱어송라이터 마가렛 조가 이 역할을 맡았다. 무엇보다, 실제 성소수자 마을로 유명한 ‘파이어 아일랜드’를 동심의 천국 ‘디즈니월드’에 빗댄 대사를 미국 주류 가족영화의 상징인 디즈니 플랫폼에서 듣게 됐다는 게 흥미롭다.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이 영화에 대해 “퀴어 로맨스에 관객들이 여전히 목 마른 시점에 등장한 탈출구 같은 로맨틱 코미디”라 호평했다.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그를 "모든 소수자의 가치를 흡수하는 스폰지"라 표현했다. 지난 3일 개막한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SIPFF)에마스터클래스 주인공으로 초청된 그를 이메일 인터뷰로 미리 만났다.
3일 개막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서
재미교포 감독 앤드류 안 마스터클래스
"디즈니의 지원, 긍정적 변화 신호"
안 감독은 “미국 방송·영화업계에 한국계 미국인 성소수자가 많지 않아서 둘이 꼭 붙어다녔다”고 말했다. ‘파이어 아일랜드’는 실제 부스터가 보언 양(영화에서 공동 주연한 배우)과 그 섬에 휴가를 가서 『오만과 편견』을 읽다 얻은 깨달음에서 출발했다.
“조엘은 『오만과 편견』의 많은 부분이 자신이 섬에서 겪은 일들과 비슷하단 걸 알게 됐죠. 곧 본인의 이야기를 더해 시나리오를 쓰기로 결심했어요. 그가 이 섬을 무대로 '오만과 편견'의 게이 아시아계 미국인 버전을 작업 중이란 얘기에 무조건 제가 연출하겠다고 했어요.”
“‘드라이브웨이’를 같이한 홍 차우(태국 배우)는 가만히 있어도 빛이 나는 배우죠. ‘파이어 아일랜드’는 조엘 킴 부스터, 보언 양, 콘래드 리카모라, 마가렛 조와 함께 작업할 수 있어 행운이었어요. 학창 시절 마가렛 조의 시트콤 ‘올 아메리칸 걸’(1994~1995, ABC)을 보며 많은 영감을 받기도 했죠.”
'돌잡이' 장면 "자녀에 기대·압박 큰 이민자 가정에 의미깊죠"
생전 처음 립스틱을 발라본 6살 소년과 아버지의 갈등을 비춘 ‘앤디’(2010), 조카 돌잔치에 가게 된 한국계 미국인 청년을 그린 ‘첫돌’(2011) 등 초기 단편 두 편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파이어 아일랜드’는 같은 감독이 맞나 싶을 만큼 경쾌한 연출이 돋보인다. 올해 SIPFF에선 한국계 소년과 한국전 참전 백인 퇴역 군인의 우정을 그린 두 번째 장편 ‘드라이브웨이’까지 그가 연출한 장·단편 영화 5편을 모두 상영한다.
최근작이 초기작에 비해 인물 묘사가 밝고 따뜻해졌다고 하자 안 감독은 “ ‘드라이브웨이’ ‘파이어 아일랜드’가 ‘스파나잇’보다 훨씬 긍정적인 작품인 것에 동의한다. ‘스파나잇’을 만들 당시 한국계 미국인 성소수자로서 제 정체성을 이해하는 과정에 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제가 제일 주목하는 부분은 아시아계 미국인 공동체에 속한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사랑하고 지지해야 하는지다. 백인 사회와의 관계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첫돌' '스파나잇'에서 거듭 사용한 한국식 돌잡이 장면에 대해선 “돌잡이를 좋아한다. 자녀들, 다음 세대에게 많은 기대와 압박이 지워지는 이민자 가정에서 돌잡이는 굉장히 의미깊다”면서 “동시에 굉장히 의미 없는 행사이기도 하다. 한국계 미국인 성소수자로서, 한국 남자는 한국 여자와 결혼해 한국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이성애 주의에 깊이 뿌리를 둔 문화로부터 소외되는 느낌을 늘 받았다 ”고 말했다.
자신의 영화에 유독 욕실 장면이 많은 데 대해선 “욕실에선 인간적이고 무방비한 존재가 된다. 스스로를 마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30년만에 부모님 모시고 한국와…한국과 협업 기회 있길"
2018년 청각장애인 친구들의 이야기를 실제 청각장애 작가·배우와 만든 드라마 ‘디스 클로즈’를 아마존 채널에 공개하며 주목받기도 했다. ‘파이어 아일랜드’를 만든 가장 큰 이유에 대해 그는 "팬데믹을 겪고 나니 잃어버린 즐거움, 우정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도 작품을 통해 행복과 슬픔, 희비극 사이 균형을 잡으면서 우리 경험을 반영하고, 늘 새로운 걸 시도하고 배우고 싶다. 영화를 만들며 세상과 저 자신을 탐험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번이 네 번째 한국 방문이라는 그는 “이번 SIPFF에선 특별전도 갖게 돼 영광이다. 부모님과 함께 한국에 온 건 30년 만이라 기분이 남다르다”고 했다. 한국영화 중에서 봉준호 감독의 ‘마더’, 이창동 감독의 ‘시’를 가장 좋아한다는 그는 "최근에 본 김보라 감독의 ‘벌새’도 멋지고 인간적인 작품이었다"며 “한국 영화계와 같이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