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다시 고개를 든 건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이 일제히 오른 결과다. 지난달 전기·가스·수도 요금은 1년 전보다 23.1%가 오르며 지난 9월(14.6%)보다 오름폭이 커졌다. 가공식품도 1년 전보다 9.5%가 올랐는데, 2009년 5월(10.2%) 이후 최고 수준이다.
전기·가스·수도와 가공식품의 물가 상승률 기여도는 각각 0.77%포인트와 0.83%포인트로 두 품목이 물가 상승률을 1.6%포인트 끌어올렸다.
물가 오름폭이 커진 것만큼 세부 내용도 나빴다. 수요발 물가 압력이 높아지며 물가 상승이 장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근원 물가(농산물·석유류 제외)가 1년 전보다 4.8%가 오르며 9월(4.5%)보다 오름폭이 커졌다. 2009년 2월(5.2%) 이후 최고치다.
지난달 근원 물가는 전달과 비교해도 0.6%가 올랐는데 7월(0.1%)과 8월(0.2%), 9월(0.3%) 등 매달 오름폭이 커지고 있다.
물가 상승률이 5% 이상인 품목 비중도 8월(50.9%)과 9월(51.5%), 10월(52.2%) 등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한은은 “광범위한 물가 상승세가 지속했다”고 평가했다.
이승헌 한은 부총재는 이날 물가상황점검회의를 열고 “CPI는 내년 1분기까지 5%대의 높은 오름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물가와의 전쟁을 선언한 한은의 고민도 커졌다. 물가만 보면 긴축 속도전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7일 "물가상승률이 5%가 넘으면 여러 고통이 있더라도 금리 인상을 통해 물가를 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일반인들의 물가 상승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10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4.3%로 9월(4.2%)보다 높아졌다. 물가상승 기대를 꺾기 위해 긴축의 고삐를 더 강하게 죄어야 할 수 있다.
문제는 식어가는 경기다. 지난달 수출은 1년 전보다 5.7% 감소했다. 2020년 10월 이후 2년 만의 역성장이다. 그나마 경제를 받쳐온 민간 소비도 고물가와 고금리 등에 언제 동력을 잃을지 의문 부호가 붙고 있다. 경기 침체 우려에 회사채 등 채권 시장이 흔들리는 등 시장의 불안이 커지는 것도 변수다.
한국금융연구원장을 지낸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국회서 "현재 물가 상승은 공급망 충격에 의한 것인데 금리 인상으로 수요 측면에서만 대응하는 것은 가학적 금리 인상"이라고 밝혔다.
오는 24일 열리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인상 전망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동안 시장에서는 한은이 빅스텝 대신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을 택할 것이라는 데 무게추가 기울었다.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데다, 채권 시장의 유동성 문제를 한은이 외면하기 힘들 것이라는 이유다.
하지만 물가가 다시 치솟으며 변수가 늘었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0.5%포인트와 0.25%포인트 인상이 절반씩 나오면서 한은 총재가 금리 인상 폭을 결정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빅스텝 인상을 한 10월 금통위 때도 이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 6명의 의견이 4(조윤제·서영경·이승헌·박기영) 대 2(주상영·신성환)로 갈렸다. 다만 현재로서는 빅스텝에 좀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물가 상승 폭이 다시 커진 데다 3분기 경제성장률(0.3%·전분기 대비)이 예상보다 선방한 만큼 한은이 빅스텝을 택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며 “내년 상반기 중 금리 인상이 끝낸 후 연말까지 높은 금리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