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고는 우리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마지막 문턱이 있음을 알려준다. 세계 어느 나라든 불가항력(不可抗力)적 사고는 피할 수 없다. 그건 신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대비 여하에 따라 사고의 횟수를 최대한 억제하고, 불의의 사고를 당하더라도 피해 규모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언은 적절하지 못했다. 그는 “통상과 달리 소방·경찰 인력을 미리 배치하는 걸로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걸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 배치 인력을 늘렸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란 불가항력적 상황을 말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안전’이란 글자가 이름에 들어가는 부처의 장관이 할 말은 아니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놓고 대비하는 것과 무방비 상태에서 사고를 맞는 것은 천양지차다. 이번 사고도 마찬가지다. 경찰 투입 숫자가 왜 그것밖에 안 됐느냐고 문제 삼는 게 아니다. 과거 데이터로 동선을 예상하고 진출과 진입 통로를 분리하거나 일방통행을 설정하는 등의 사전 조치를 했더라면 상황은 달랐을지 모른다. 그뿐이 아니다. 사고가 난 골목길은 초저녁부터 인파가 몰려 이미 밤 9시 전부터 통행량이 한계수위에 이르렀다. 분명 이런 사실을 CCTV로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 진입을 억제하는 현장 정리도, 분산을 유도하는 안내방송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유감스러운 건 국가적 재난을 정쟁의 소재로 삼으려는 야당의 움직임이다. 정부·여당을 몰아붙여 정권 교체의 원동력으로 삼는 데 성공했던 세월호 사건의 기억을 가진 야당은 국민 애도 기간이 끝나기 무섭게 정치 공세에 나설 것이다. 야당 당직자가 이태원 참사를 청와대 이전과 연결지으려 한 게 그 전조다. 만일 이태원 사고가 나던 그날, 윤석열 대통령이 어떤 사정으로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하는 게 늦었더라면 ‘박근혜 7시간’에 못지않게 공격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정쟁은 재난 앞에서 멈춰야 한다.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젊은 영령들이 편히 눈을 감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기성세대와 정부, 국민 모두의 책임이다.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던 8년 전 세월호의 다짐을 지키지 못하고 또 이런 비극을 겪어야 했는지 돌아보고 또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