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장관을 언니라고 부른다며, 이정근 2000만원 요구했다"

중앙일보

입력 2022.10.27 21:17

수정 2022.10.27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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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가 박모씨(62)로부터 10억원의 불법 자금을 받아 구속 기소된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의 검찰 공소장엔 이 전 부총장이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한 정황이 생생히 담겼다. 이 전 부총장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언니라고 부를 정도로 친하다”, “유력 정치인의 측근이며, 대통령 비서실장과도 친하다”고 말하는 등 정계 유력 인사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박 씨에게 돈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소장엔 문재인 정부 당시 장관급 인사 3명, 민주당 국회의원 2명, 식품의약품안전처장, 남동발전 사장, 한전 감사 등 청탁 대상 인사 10여명의 실명이 적혔다.
 

“특가법·정치자금법 위반” 이정근 檢 공소장

사업가로부터 청탁을 빌미로 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의혹 등을 받는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이 지난달 30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27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이 전 부총장의 공소장을 보면 이 전 부총장과 박 씨가 처음 알게된 건 2019년 11월 말경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박 씨는 벤처펀드를 운용하는 중소기업창업투자사를 인수하려고 했지만, 이 회사의 감사가 인수를 반대해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중 해당 감사가 이 전 부총장과 친하다는 사실을 알고 감사를 설득하기 위해 이 전 부총장을 만나 청탁했다.
 
이에 이 전 부총장은 “투자사 운용 자금이 중소벤처기업부 자금이라 장관을 움직여야 한다”며 “장관을 언니라고 부를 정도로 친한 관계이니, 장관과 감사에게 인사할 돈으로 2000만원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돈을 요구했다. 이 전 부총장은 이후에도 “밥도 사고 해야한다”며 1000만원, 이듬해 박 씨가 지분 양수계약을 체결한 후 감사 인사 등 명목으로 1000만원 등 이 건과 관련해 총 4000만원을 받았다.
 

“靑비서실장 친하다”며 조카 전세금 받아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이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에 출석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검찰에 따르면 이 전 부총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계속해서 알선수재 명목의 돈을 받았다. 박 씨는 2020년 4월 포스코건설이 갖고 있던 구룡마을 개발 1순위 우선수익권을 매수하기 위해 “대통령 비서실장의 도움을 받고 싶다”며 또다시 청탁을 했고, 이 전 부총장은 “실장님이 도와주신다고 했다. 국토교통부 장관과도 친하다”며 조카의 전세자금을 요구, 총 2억원을 받았다.


 
이 전 부총장은 2억원을 받은 이후에도 돈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전 부총장은 박 씨에게 비서실장과 청와대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며 “그동안 비서실장에게 돈을 주지 않았는데 이제 비즈니스 관계로 전환하려 한다”고 말해 1억원을 추가로 받는 등 이 건과 관련해 총 3억1500만원을 수수했다.
 
박 씨가 2020년 7월 다른 기업의 수주 업무를 대행하면서 한국남동발전에 소수력발전 설비를 납품하려고 할 때도 이 전 부총장이 나섰다. 이 전 부총장은 국회 중기벤처위 소속 의원에게 부탁, 해당 기업 관계자들이 남동발전 사장을 직접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해 준다는 대가로 성공보수를 포함해 총 6500만원을 받았다.
 

2번 낙선 후 도전한 총선, “스폰 해달라”

3·9 국회의원 서울 서초갑 재·보궐선거에 출마한 이정근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지난 2월 17일 서울 방배본동 인근에서 유세운동을 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스1.

이 전 부총장은 자신의 선거자금을 요구해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혐의도 받았다. 이 전 부총장은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와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에 나섰다가 연이어 낙선했는데, 자금이 부족해진 이 전 부총장이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다시 도전하면서 앞서 청탁을 들어준 박 씨에게 돈을 요구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 전 부총장은 경선일이 다가오자 박 씨에게 “어른들에게 인사해야 하는데 돈이 급하다”며 5000만원을 받았고, 이후 공천이 확정된 후 민주당 부대변인으로 임명된 후에도 “내 뒤에 이런 분들이 있다. 나를 도와주면 나중에 사업적으로 많이 도와줄 테니 후원해달라”고도 말했다. 선거비용을 받은 대가로 박 씨에게 산업통상자원부, 국토부 장관 알선도 청탁받았다.
 
검찰이 특정한 이 전 부총장의 불법자금 수수액은 총 10억원. 이 중 9억4000만원은 부정청탁 및 알선수재, 3억3000만원은 불법 선거자금으로 봤다. 2억7000만원은 알선수재와 불법 선거자금에 모두 해당하는 것으로 봤다.
 

선거운동원 수당 대납 혐의로도 기소 

 
이 씨는 이 씨와의 돈거래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급하게 필요할 때 빌렸고 이를 갚는 중에 박 씨가 허위사실을 퍼뜨리며 법적 분쟁을 일으켰다”는 입장이다. 이 씨는 “저에게 제기된 여러 의혹은 사실과 다르다”며 박 씨에게 청탁을 받거나 로비한 적이 없다고 밝혔었다.
 
한편 이 씨는 3·9 서초갑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와 관련해 선거운동원들에게 기준치 이상의 수당을 지급하고 이를 회계책임자에게 대납시킨 혐의(공직선거법·정치자금법 위반)로도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