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가까워도 길 건넌다…고령화 속 노인 교통사고 '빨간불'

중앙일보

입력 2022.10.2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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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잠실역 인근 교차로에서 우산을 쓴 시민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연합뉴스

2022 안전이 생명이다 ⑥ 

고령화 시계가 빨리 돌아가면서 노인 교통사고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피해가 집중된 고령층은 어린이 등 다른 연령대에 비해 그 감소세도 더딘 편이다. 신체·인지 능력 저하로 운행 중인 차량이 가까이 접근해도 길을 건너는 경우가 많은 데다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치명적이다.
 
25일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국내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019년 3349명에서 2021년 2916명으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44%(1295명)가 65세 이상 노인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비율(27%)의 1.6배에 달한다. 이전보다 사망자 규모는 줄었다지만 여전히 고령층의 피해가 심각하다는 의미다.
 
고령층은 연간 사망자 감소 폭도 5.8%에 그치면서 전체 보행자(10.1%), 어린이(19.5%)보다 훨씬 더딘 편이다. 그렇다 보니 인구 대비 고령자 교통사고 사망자 수(2019년 기준)는 OECD 30개 회원국 중 가장 많다. 
 
특히 급속한 고령화 속에 노인 인구는 빠르게 늘고 있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20년 815만명이던 노인 인구는 2050년 1900만명이 될 전망이다. 앞으로는 교통사고로 숨지는 고령자가 덜 줄거나 오히려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교통사고로 숨지는 고령층이 많은 데엔 이들 보행자가 가진 특성이 깔려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보행자의 횡단 판단 능력을 실험했더니 고령자는 상대적으로 차량과의 거리가 더 짧을 때 길을 건너려는 경향이 뚜렷했다.


60세 미만은 횡단보도에서 평균 76.7m 거리에 차량이 접근하면 횡단을 포기하고 인도로 물러섰다. 반면 60세 이상은 차량이 64.7m 앞까지 접근해야 건너지 않았다. 특히 차량 운행 속도가 높을수록 연령별 판단의 차이가 뚜렷했다. 시속 60㎞일 때 횡단 포기 시점은 60세 이상 65.7m, 60세 미만 81.2m로 그 차이가 15.5m에 달했다. 하지만 시속 50㎞에선 8.5m로 줄었다.
 
고령자는 걷는 속도가 느린 데다 횡단 여부 판단이 어렵다 보니 사고·사망 위험은 높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17~2019년 무단횡단으로 보행자가 숨진 사고의 62.1%는 고령자였다. 또한 노인들은 신체적으로 취약해 교통사고를 당하면 치사율이 높은 편이다.
 
한국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보행자가 안전하게 길을 건너려면 접근 차량 속도와 거리, 자신의 보행 시간 등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면서 "고령자는 인지 능력 저하로 횡단 판단 능력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차가 빨리 올 수 있다는 걸 고려해 여유를 두고 길을 건너야 한다"고 말했다.

실버존 표지판. 사진 서울지방경찰청

하지만 노인보호구역(실버존) 같은 고령자 교통 법규를 아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다. '민식이법'과 스쿨존 등으로 주목도가 높은 어린이 교통안전과 대조적이다. 이 때문에 운전자는 노인 보행자를 배려하고, 고령자들도 무단횡단을 자제하는 등 안전 중심의 교통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도 고령 보행자 사망을 줄이기 위한 맞춤형 대책을 내놓고 있다. 올해 들어 실버존 지정 기준이 복지시설 등 시설물 중심에서 노인 보행이 빈발한 장소로 확대되고 있다. 보행 속도에 따라 녹색 신호가 자동 연장되는 등의 '스마트 횡단보도'는 최근 2년간 300곳가량 설치됐고, 앞으로 더 늘릴 계획이다. 실버존에 단속장비, 안전시설 등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중앙일보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