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1월 28일 저녁, 박상렬(75·여) 씨는 아들이 아르바이트를 가는 게 못마땅했다. 감기 몸살로 병원에 다녀온 둘째 아들 편준범(당시 25세) 씨는 잠시 눈을 붙인 뒤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일터인 호프집으로 향했다. “조심히 다녀올게요.” 편씨가 엄마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이튿날 아침까지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노심초사 기다리던 박씨에게 병원 관계자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드님이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빨리 오세요.” “실패 확률이 90% 이상”이란 말을 듣고도 뇌수술에 동의했지만 돌아온 것은 뇌사 판정이었다. 그리고 이내 박씨 부부는 장기 기증을 결정했다. 박씨는 “마지막 가는 길에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한 결정”이라며 “아르바이트를 보낸 것부터…엄청 자책했지만 7명의 생명을 살리고 떠났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됐다”고 말했다. 박씨는 “‘어딘가에 준범이가 살아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준범씨가 떠난지 20년. 박씨는 ‘장기기증 유가족 동료상담가’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지난 18일 박씨를 포함한 5명의 장기기증 유가족이 동료상담가 교육을 수료했다고 밝혔다. 장기기증을 결정한 유가족들과 전화·대면 상담을 진행하며 상실감·죄책감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돕는 역할이다. 박씨는 “11년만에 나간 유가족 모임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위로를 받았다. 더 빨리 만났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며 “가난해보지 않고는 가난을 말하지 말라는 말이 있듯, 경험해본 사람만 건넬 수 있는 위로가 있다. 제 비통함이 회복되어가는 과정이 선한 영향력으로 작용하면 좋겠다”며 교육에 참여한 동기를 설명했다.
“유가족이 유가족에게”…같은 입장에서 위로 되고파
이때 홍씨의 소식을 들은 한 유가족이 홍씨의 집을 찾아왔다. 22세 아들을 잃은 지 8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버지였다. 함께 차를 타고 나가서 드라이브하고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마시면서 그는 “형님도 힘들 것 저도 압니다. 그래도 우리 서로 이야기 터놓고 헤쳐나갑시다”라고 말했다.
홍씨는 “당시의 경험은 이 강의를 제가 들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라며 “다른 유가족과 유대관계를 가지고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은 바람이 있었기에 기꺼이 교육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교육 참여자들은 교육을 받으면서 자신의 묵은 아픔을 삭일 수 있었다고 했다. 박씨는 “사실 처음에 병원에서 들었던 생각은 ‘왜 하필 내 아들이냐’ 하는 분노였다”며 “수업에서 슬픔의 첫 단계가 분노와 부정이라는 이론을 배웠는데, ‘나도 그랬는데…’하는 생각이 들어 공감이 갔다”고 말했다.
이들의 교육 맡은 양은숙 상담교육박사는 “이미 내적 자원을 가지고 있는 선배 도너패밀리들이 상담가 교육 통해 유가족 회복에 도움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선경험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유가족의 심리 치유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