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호의 사이언스&]노벨 생리의학상으로 본 고유전체학
스반테 페보(1955~ ). 이달 초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 단독 수상자로 선정된 스웨덴 출신 진화유전학자의 이름이다. 1997년부터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 유전학 분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그는 ‘고유전체학’(paleogenomics)의 창설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한국 내에서도 2015년 출간된 단행본『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로 대중에게 비교적 잘 알려졌다. 그는 대학원생 시절이던 1981년 지도교수 몰래 고대 이집트 미라에서 DNA를 추출하고 염기서열을 분석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 학계를 놀라게 했다. 이후 독일 네안더 계곡에서 발견된 뼈를 통해 고인류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서열을 해독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유전체)까지 해독했다. 또 시베리아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한 손가락 뼈에서 DNA를 추출, 뼈의 주인공이 또 다른 고인류라는 것을 밝혀냈다. 데니소바인 발견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었다.
고유전체학은 멸종된 종의 유전체 정보를 재구성하고 분석하는 학문이다. 또한 고고유전학(archaeogenetics)은 고 DNA에 대한 분석을 고곡학 및 인류학적 증거와 교차검증함으로써 인류사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정립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두 학문 모두 고 DNA가 연구대상이다. 문제는 수만~수십만년 된 고 DNA가 손상되지 않고 남아있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오래된 뼈에서 시료를 채취할 때 남아있는 DNA 자체가 극히 적은데다, 미생물 등의 DNA가 섞여 분석이 어렵다. 페보 박사는 오랜 연구기간 동안 이렇게 오래되고 오염된 시료 속에서 원하는 DNA를 골라낼 수 있었다. 이후 분자생물학 분야의 기술적 발전은 고DNA 연구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첫째가 고DNA의 양을 급격하게 증폭시킬 수 있는 중합효소연쇄반응(PCR) 기술이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시료의 유전체 전체를 단시간에 모두 분석하는 전장유전체 염기서열분석(whole genome sequencing)이 가능해졌다. 시간이 갈수록 유전체 해독의 시간과 비용 또한 크게 줄어들었다. 게놈 분석을 통해서 인류의 기원에 대한 가설이 증명되고, 무엇이 가짜 과학인지 알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게놈 분석을 통한 인류학과 고고학 연구는 갈 길이 멀다. 정충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페보 박사의 연구로 고인류와 현생인류 진화의 비밀이 다 밝혀진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최근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유전체 분석 기술 덕분에 고인류학 연구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현재 분석 기술로는 아직 고대인 유전체를 완전히 해독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며“뒤집어 얘기하면 향후 분석기술이 발전할 수록 양적으로 질적으로 옛 유전자의 비밀도 더 많이 풀린다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고유전체 연구의 국내 사정은 어떨까. 서울대 인류학과 생물인류학 실험실 연구진이 펴낸 ‘고고유전학의 분석 원리와 최근 고유전체 연구동향’이라는 제목의 연구논문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고유전체 연구는 아직 부진한 실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나마 박종화 UNIST 교수가 러시아 극동 지방의 ‘악마문(Devil’s gate)’ 동굴에서 채취한 고대인의 머리뼈 게놈 분석을 통한 것과, 최근의 1700년전의 삼국시대 가야인의 고유전체를 통합 분석한 것이 한민족의 기원을 밝힌 대표적인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한민족은 3만~4만 년 전 동남아~중국 동부 해안을 거쳐 극동지방으로 흘러 들어와 북방인이 된 남방계 수렵 채취인과 신석기 시대가 시작된 1만 년 전 같은 경로로 들어온 남방계 농경민족의 피가 섞여 형성됐다. 특히 4000~5000년 전 청동기 철기시대에 농경민족의 인구폭발로 현재의 동북아시아계 한국인의 유전적 주류의 정체성이 확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