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트러스 취임 44일만 "그만둔다" 역대 최단명 총리 불명예

중앙일보

입력 2022.10.20 22:22

수정 2022.10.20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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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20일(현지시간)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총리직 사임을 발표하고 있다.AFP=연합뉴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20일(현지시간) 결국 총리직 사임을 선언했다. 감세안 철회 후폭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황에서 각료들이 잇따라 사퇴하면서다. 지난달 6일 총리에 취임한 트러스는 44일만에 자리에서 내려오면서 영국 역사상 ‘최단명 총리’란 불명예를 안게 됐다.
 
BBC 등에 따르면 트러스 총리는 이날 오후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선거 공약을 지킬 수 없어서 보수당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다”며 “찰스3세 국왕에게 사임한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 주 당 대표 선거로 후임자가 결정될 때까지 총리직에 머물겠다”고 말했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에선 집권당 대표가 총리를 맡는다. 당 대표를 사임해도 후임 당 대표 겸 총리가 선출되기 전까지는 총리직을 맡는 것이 관례다. 트러스 총리의 전임인 보리스 존슨 전 총리도 지난 7월 사임을 발표한 뒤 새 총리가 선출될때까지 총리직을 맡았다.
 
이로써 트러스 총리는 영국 역사상 최단명 총리란 기록을 세우게 됐다. 이전까지 영국에서 재임기간이 가장 짦은 총리는 19세기 초반에 총리를 지낸 조지 캐닝이다. 그는 취임 119일 만에 숨져 총리 자리에서 물러났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왼쪽)가 20일(현지시간)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총리직 사임을 발표한 뒤 관저로 들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러스를 총리 자리에서 끌어내린 것은 잇따라 보인 경제정책 ‘헛발질’이다. 트러스는 지난달 23일 대대적인 감세와 공급 부문 개혁을 통해 영국의 경제성장을 이끌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반세기 만에 최대 규모인 450억파운드(약 72조2371억원)의 감세 정책을 발표하면서 재원 대책은 제시하지 않았다. 시장에선 영국 정부가 엄청난 금액의 국채를 발행해 자금을 마련한다고 받아들였다. 이에 영국 국채 가격은 폭락(국채금리 폭등)하고 파운드 가치가 폭락했다.

 
이에 정치권과 시장에서 비판이 쏟아지자 트러스 총리는 지난 3일 ‘부자 감세’라는 비판을 들은 소득세 최고세율 폐지 계획을 철회했다. 14일엔 법인세 인상 폐지 계획을 없던 일로 하고 감세 정책을 주도한 쿼지 콰텡 재무장관도 경질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트러스의 입지는 불안했다. 콰탱 장관의 후임으로 취임한 제러미 헌트 재무장관은 감세안 등 트러스 총리의 경제정책을 대부분 폐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19일에는 수엘라 브레이버먼 내무장관이 총리 사임을 요구하며 장관 자리에서 물러났다. 브레이버먼 장관까지 사임하자 트러스 총리의 권위는 심하게 흔들렸다. 내각 장관들이 줄사퇴하며 총리 자리에서 내려온 존슨 전 총리의 전철을 밟는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다. 일각에선 그를 두고 ‘허울만 남은 총리(Prime Minister In Name Only·PINO)’, '좀비 총리' '양상추(유통기한) 총리' 란 평가를 내놨다.
 
그럼에도 트러스 총리는 19일 하원에서 열린 총리 질의응답에서 야당인 노동당이 사임을 요구하자 “나는 싸우는 사람이며, 그만두는 사람이 아니다”고 사임설을 일축했다. 하지만 20일 오전 보수당 1922위원회의 그레이엄 브래디 의장을 만난 뒤 사임으로 돌아섰다.
 
트러스의 후임으로는 헌트 장관과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 벤 월리스 국방장관, 페니 모돈트 원내대표가 거론된다. 최근 보수당원 53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응답자의 32%가 존슨 전 총리를 적합한 후임자로 꼽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