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5시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는 유제품 전문기업인 푸르밀 본사. 신준호(81) 푸르밀 회장은 퇴근길에 중앙일보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표정과 말투는 담담했으나 “(직원보다) 제가 걱정이 제일 많다”고 말할 땐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전날 푸르밀은 신동환(52) 대표이사 명의로 전 임직원 350여 명에게 이메일을 보내 다음 달 30일 자로 사업을 종료하고, 정리해고한다고 통보한 상태다. 경영 악화에 오너 경영인이 하루아침에 백기를 들자 회사는 ‘초상집’이 됐다.
- 갑자기 사업 종료와 해고 통보를 했다.
- “(직원들도) 걱정이 많겠지만 나는 직원들보다 10배 더 걱정이 많다. 끝까지 (회사를 살릴) 노력은 해 보겠다.”
- 매각이나 자구책 마련 등 다른 방법은 없었나.
- “방안이 있다면 왜 그렇게 하겠나.”
- 부동산 매각을 통해 경영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내부 의견도 있던데.
- “잘 알겠다. 내가 제일 걱정이 많다.”
이날 문래동 본사 인근에서 만난 회사 직원들은 착잡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직원 A씨는 “회사가 어려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급박하게 해고를 통보할 줄은 몰랐다”며 허탈해했다. 그는 “특히 40대 중반 이상 나이 든 사원은 이직도 어려우니 더 난감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직원 B씨는 “오늘 오너 경영인이 모두 출근했는데 직원들에게 처우 관련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며 답답해했다. 이 회사는 퇴직금 외에 추가로 보상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회사 내부에서는 오너 경영의 실패라는 주장도 나왔다. 신 대표가 취임한 2018년부터 4년 내리 적자를 봤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기간에 영업적자는 15억→89억→113억→124억원으로 불어났다. 매출은 20% 이상 빠졌다. 유업계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남양유업과 풀무원다논 등이 적자 상태다. 직원들은 노조를 중심으로 “오너가의 경영 실패를 직원에게 떠넘긴다”고 주장하며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문래동 본사 부지(4618.9㎡)가 800억원대, 부산 해운대 부동산을 포함해 1200억원가량의 자산이 남아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시장에선 LG생활건강이 푸르밀 인수를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LG생건 측은 “구체적인 이유를 밝힐 수는 없으나 푸르밀 인수를 진행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