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리스크 와중 “친일 국방” 논란
대선 승리 좌우할 중도층 동의 난망
중도전략 실패 자인 이회창이 교훈
대선 승리 좌우할 중도층 동의 난망
중도전략 실패 자인 이회창이 교훈
1935년생으로 만 87세, 올 초 대선을 앞두고 인터뷰했던 그는 논리적이고, 꼬장꼬장한 20여년 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자신의 논리가 한 치라도 잘못 전해질까 매 순간 완벽한 언어를 구사하려 했다. 수미쌍관과 기승전결이 여전히 ‘대쪽 판사’의 판결문 같았다. 보수 진영 내 최고라는 논리정연함과 정돈감이 여전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이 전 총재가 2017년 발간한 회고록을 일부러 찾아 꼼꼼히 읽어봤다. 2002년 패배에 대한 본인의 분석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대통령이라는 국가 지도자의 일에 대한 정열과 판단력 그리고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유권자 중 좌·우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층, 이른바 중도층이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데 나는 이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누구보다 강한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그는 다른 이유들을 열거하기에 앞서 중도층 전략 실패를 분명히 인정했다. 보수를 쥐락펴락했던 노정객의 회한이었다.
최근 정치권엔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이 전 총재를 비교하는 이들이 있다. 출신 배경과 학벌·경력·이념 등 모든 면에서 딴판인 두 사람을 동렬에 두고 분석하기는 물론 어렵다. 그러나 대선 석패, 대선 상대였던 현직 대통령과의 미묘한 관계, 무엇보다 패배 이후의 빠른 복귀, 강경 투쟁 쪽에 쏠린 대여 전략 등이 닮아있다는 얘기가 많다. 169석의 거대 야당을 이끄는 이 대표로선 이 전 총재가 “결국은 내 능력 부족이었다. 패배는 전적으로 내 책임”이라며 내놓은 회고록 속 ‘패인 분석’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대표의 발걸음은 이와 정반대다. 한·미·일 연합훈련에 대해 “극단적 친일 행위이고 친일 국방”이라고 비난해 큰 논란을 부른 게 대표적이다. 당장 “사법 리스크 와중의 이 대표가 이 논란을 지렛대로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전례 없는 템포와 강도로 우리를 압박하는 북한엔 침묵하며 ‘반일’만 외치는 태도에 중도층들이 공감할 리 없다. 중도층은 대선 재수를 노리는 이 대표의 목줄을 쥐게 될 사람들이다. 이들은 노란봉투법 등 자신들이 동의하기 힘든 법안 처리 과정에서 이 대표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도 숨을 죽이고 지켜볼 것이다. 윤 대통령의 고전에도 민주당의 지지율이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역시 중도층의 외면 때문 아닌가. 중도층 지지 없이는 이길 수 없다. 천하의 이회창도 못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