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58년 지나도 이목구비 뚜렷…성 요한 23세 유해 모습 [이 시각]

중앙일보

입력 2022.10.12 14:49

수정 2022.10.12 14:59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60주년 기념 미사가 11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에서 열렸다. 이날 미사에는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어 가톨릭 개혁을 이끌었던 교황 성 요한 23세(교황 재위:1958년 10월 28일~1963년 6월 3일)의 유해가 안치됐다. 유리관 속 성 요한 23세의 모습은 선종 후 58년이 지났지만, 어제 선종한 것처럼 온전해 보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1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60주년 기념 미사에서 교황 성 요한 23세의 유해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 교황청

성 요한 23세의 유해가 처음으로 대중에 공개된 건 선종 37년만인 2001년이다. 당시 교황청 지하묘지에 있던 시신을 성베드로대성당으로 옮기기 위해 관을 열었는데 선종 당시의 얼굴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과거 이런 현상은 기적의 하나로 여겨져 시복·시성의 요건인 기적 중 하나로 인정된 적도 있었다. 현재는 비교적 서늘하며 온도 변화가 적은 교회 지하무덤의 환경적 특성으로 해석해 기적으로 여기진 않는다. 성 요한 23세의 유해는 2018년 교황 선출 60주년·선종 55주년을 기념해 유리관에 담긴 채 바티칸에서 약 600㎞ 떨어진 그의 고향인 이탈리아 베르가모를 찾기도 했다.

교황 성 요한 23세의 유해가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 안치돼 있다. 사진 교황청

교황 성 요한 23세의 유해를 바라보는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 교황청

성 요한 23세는 제261대 교황으로 본명은 안젤로 주세페 론칼리다. 1931년부터 교황청의 외교관으로 활약하여 1953년에는 추기경, 베네치아의 총대주교를 거쳐 1958년 교황에 선출되었다. 온화하고 탈권위적이었던 그는 재위기간 중에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변혁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를 소집하였으며, 1963년 4월 11일 최초로 가톨릭 신자들에게만이 아니라 선의의 모든 사람에게 보낸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를 반포하였다. 특히 그는 당시 미국과 소련 사이에 고조되었던 핵전쟁의 기운을 차단하고 분쟁을 조절하였다. 1963년 교황으로서는 최초로 타임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다.

성 요한 23세의 유해가 2001년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 전시되고 있다. AP

교황 성 요한 23세의 유해가 2018년 바티칸을 떠나 고향인 이탈리아 베르가모 비토리아 베네토 광장에 도착하고 있다. 사진 CNS

성 요한 23세는 2000년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2014년 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시성돼 성인품에 올랐다. 교황청 시성성은 성 요한 23세가 시성을 위해 필요한 두 번째 기적 심사 없이 시성될 수 있는 거룩한 인물이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한 공로를 인정해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시성 승인을 받았다. 성 요한 23세의 축일은 일반적 관례에 따라 선종한 날인 6월 3일에 기념하다가 시성식과 함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막일인 10월 11일로 변경하여 기념하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표지에 실린 교황 성 요한 23세. 사진 TIME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9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회고하며  "우리는 당시 세계를 위협한 핵전쟁의 위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왜 역사로부터 배우지 않는가. 그때도 갈등과 긴장의 고조가 있었지만, 평화의 길이 선택받았다"며 핵전쟁 가능성을 언급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