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출없이 27억 썼다...강남 재건축 싹쓸이한 2030

중앙일보

입력 2022.10.09 05:00

수정 2022.10.09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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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가 26억5000만원에 공개경쟁입찰로 매각한 서울 서초구 서초동 래미안리더스원 전용 84 ㎡ 보류지 6가구 중 5가구가 20~30대에게 돌아갔다.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강남 재건축 '이삭' 쓸어 담은 30대

 
주택시장 큰 손으로 떠오른 30대가 서울 강남 재건축 고가 아파트 시장에서 ‘이삭 줍기’를 싹쓸이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듯 자금을 모아 주택 구입)을 불사한 30대 ‘진격’의 결정판인 셈이다. 
 
2019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강남 주요 재건축 단지의 보류지 계약 내용을 조사한 결과 5개 단지 23가구 중 14가구(61%)의 주인이 30대(분양 시점 기준)다. 1가구를 산 20대를 포함하면 3가구 중 2가구를 '2030'이 매수했다.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아너힐즈(옛 주공3단지)·개포래미안포레스트(개포시영), 서초구 내 반포동 디에이치반포라클라스(삼호가든맨션3차), 잠원동 반포센트럴자이(신반포6차), 서초동 래미안리더스원(서초우성1차)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30대가 강남 재건축 보류지 61% 차지 

  
보류지는 재건축으로 새로 짓는 아파트 중 조합원 몫을 제외한 주택 중 일반분양하지 않은 물량이다. 조합원 분양 대상자 누락이나 착오·소송 등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전체 건립 가구 수의 1% 범위에서 남겨둘 수 있다. 보류지 분양은 재건축 분양시장의 이삭 줍기인 것이다.
 
이들 5개 단지 보류지가 총 25가구이고 2가구는 분양 중이다.


30대가 산 보류지가 디에이치반포라클라스 5가구 중 4가구, 래미안리더스원 7가구 중 4가구 등이다. 
 
보류지 주택형이 대부분 59~84㎡(이하 전용면적)의 중소형이고 1가구만 106㎡이었다. 분양가상한제 등의 분양가 제한을 받지 않아 재건축조합이 대개 시세 수준에서 최저가를 정해 공개경쟁입찰로 분양한다. 입찰로 팔지 못하면 선착순 등으로 임의분양한다.
 
입찰 최저가가 17억~39억원이었다. 낙찰 등을 통한 실제 분양가가 18억~40억원이다.  
 
30대가 분양받은 주택이 59~84㎡이고 금액이 18억~33억원이다. 평균 26억8000만원이다. 디에이치반포라클라스 84㎡가 33억원이다. 20대가 입찰가격으로 써내 낙찰한 구입 가격은 27억원이다. 
 
15억원 초과는 정부 규제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매수자가 자력으로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20~30대가 가져간 15가구 중 14가구가 주택담보대출을 끼지 않았다. 전액 현금으로 마련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30대 가운데 고소득 전문직, IT업계 등의 고액 연봉자 등이 현금으로 샀거나 부모 등의 지원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현금부자나 금수저가 아니면 엄두를 내지 못한다. 

보류지 5가구 중 4가구를 30대가 낙찰한 서초구 반포동 디에이치반포라클라스.

영끌도 보인다. 1가구가 분양가의 80%가 넘는 22억원(채권최고액)을 대출 규제가 덜한 제2금융권에서 대출받았다.

 
강남 재건축 보류지에서 60%가 넘는 30대 매수 비율은 기존 아파트보다 훨씬 높다. 서울 아파트 시장에서 2019년 이후 30대가 40대를 제치고 가장 많이 집을 샀다. 비율이 2021년 36.4%까지 올라갔고 올해 들어 29.5%로 내려가긴 했지만 여전히 가장 큰 손이다. 
 
2019년 이후 지난 8월까지 전체 연령별 서울 아파트 매입자 비율을 보면 30대 32.4%, 40대 27.5% 등이다. 
 
하지만 집값이 비싼 강남·서초구에선 여전히 30대가 40대에 밀린다. 같은 기간 강남구와 서초구를 합친 거래에서 30대가 24.1%로 40대(36.5%)에 10%포인트 이상 적다.
  
강남 재건축 보류지의 30대 강세는 20~30대 MZ세대의 ‘명품’ 투자 선호 경향으로 풀이된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부동산시장에서 강남 재건축 새 아파트가 투자성이 뛰어난 블루칩으로 꼽히면서 투자의식이 강하고 자금 사정이 좋은 30대가 주목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30대에 입주권·일반분양 문턱 높아

 
30대는 자금이 많아도 조합원이 되거나 일반분양 받기엔 문턱이 높아 보류지를 노렸다. 조합원 입주권은 조합원 명의 변경 제한으로 매물이 귀하고 권리관계가 복잡하다. 30대가 무주택기간이 짧은 이유 등으로 청약가점이 낮아 일반분양 당첨이 어렵다. 분양권 전매도 안 된다. 
 
백준 J&K도시정비 대표는 "젊은층이 재건축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보니 보류지 분양이 절호의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2019년 1월~2022년 8월 누계. 자료: 한국부동산원

뜨겁게 달아오른 주택시장이 올해 빠르게 식으면서 강남 재건축 ‘황금 이삭’을 주운 2030도 가격 하락 우려에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로 예상된다. 아직은 구입 가격에서 오른 시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2020년 낙찰가격이 18억원대였던 개포래미안포레스트 59㎡가 지난해 22억9000만원까지 오른 뒤 올해 다소 내린 19억5000만~20억3500만원에 거래됐다. 올해 상반기 33억원이었던 디에이치반포라클라스 84㎡ 호가가 33억9000만~37억원이다. 2019년 말 40억원에 낙찰된 디에이치아너힐즈 106㎡와 같은 주택형이 이달 43억원에 팔렸다. 
 
부동산중개업소들은 이들 단지 집값이 쉽게 빠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업계 관계자는 “강남 재건축 보류지를 분양한 단지들이 가장 최근에 지어진 브랜드 단지로 강남에서도 알짜 중 알짜로 꼽힌다”며 "가격이 내리더라도 대출이자 부담이 없기 때문에 매수자들의 부담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