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남정호의 퍼스펙티브

[남정호의 퍼스펙티브] 미, 대만 위기 시 주한미군 일방적 차출 가능

중앙일보

입력 2022.10.06 01:00

수정 2022.10.06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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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대만해협 충돌과 한국 개입 논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대만해협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8월 이뤄진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뒤 중국의 무력시위가 계속되는 탓이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소극적 대응을 목격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해도 별 탈이 없을 거라고 생각할 공산도 커졌다. 

주한 주일 미군 비교

 어떤 원인이든 대만해협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날 경우 한국으로서는 강 건너 불이 될 수 없다. 당장 한국에 닥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은 두 가지다. 첫째, 어떤 식으로든 대만 사태에 한국이 개입해 달라는 미국의 압력이 가해지고 둘째, 주한미군이 동원될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한국은 대만 사태에 끌려 들어가고 주한미군이 대만으로 파병되는 걸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는가. 한·미 동맹과 관련된 각종 조약 등을 바탕으로 한국의 선택지를 살펴본다.  
 

유엔 총회 참석 차 뉴욕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CNN과 인터뷰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인터뷰에서 ″한국은 강력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북한 도발에 대응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밝혀 대만 분쟁 개입에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CNN 촬영

뚜렷한 한·미 간 입장 차이 
지난달 29일 윤석열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간 만남 이후 발표된 대통령실과 백악관의 보도자료에는 의미심장한 차이가 있었다. 백악관 측은 "두 사람이 중국과 대만, 그리고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에 대해 논의했으며 이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의 핵심 요소라고 해리스 부통령이 강조했다"고 밝혔다. 반면 대통령실 측 자료에선 이 대만 관련 부분이 완전히 빠져있다. 대만 사태에 대한 양국의 입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요컨대 한국 측은 대만 사태에 말려들 것을 기피하지만, 미국은 적극적으로 개입해 줄 것을 바라는 상황이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한국의 개입을 공식적으로 희망한 적은 없지만, 전직 고위 관리나 한반도 전문가들은 불가피한 일이라며 개입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실제로 지난 7월 마크 에스퍼 전 국방장관은 미국의 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대만해협에서 충돌이 발생해 미국이 개입하는 경우, 일본과 한국이 어떤 방식으로든 관여하지 않는 상황은 상상하기 힘들다"며 "전쟁 수행 지원이 됐든, 경제 교역 중단이 됐든 대만 유사시 역내 국가들은 분쟁에 말려들고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 측은 대만 사태 개입을 꺼리는 빛이 역력하다. 이유는 자명하다. 최대 무역 파트너인 데다 동북아 최강국인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가능성은 작지만 한국군이 파병돼 피를 흘리게 된다면 여론도 극도로 악화할 게 뻔하다. 지난달 25일 유엔 총회 참석차 뉴욕 방문 중이던 윤석열 대통령이 "만약 중국이 대만을 공격한다면 북한 역시도 도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대한민국에서는 강력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북한 도발에 대응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라고 직설적으로 부정적 입장을 밝힌 것도 이런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다.

미국, 한·일에 지원 요청할 공산 커
주일미군 동원 시 일 측 승인 필요
"한·일, 어떤 형식이든 관여하게 돼"
일본처럼 미군 차출 막을 힘 있어야

지난 8월 말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에 참가한 주한미군 장병들이 한국군과 함께 대테러 훈련을 하고 있다. 뉴스1

대만 충돌시 미 지원, 의무 아니야 
 일각에서는 "굳건한 한미동맹 유지 차원에서 역내 분쟁 발생 시 미국을 지원하는 게 동맹국 한국의 의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과연 그럴까. 이 질문의 답을 찾으려면 한미동맹의 기본 골자를 규정한 '한미상호안보조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약 3조는 "타 당사국 영토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서의 무력 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 인정하고 공통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각자의 헌법상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고 돼 있다. 
 여기에서 눈여겨볼 내용은 "타 당사국 영토에 대한 공격"이란 대목이다. 즉 중국의 대만 침공이 발생할 경우 여기가 태평양 지역인 것은 맞지만, 미국 영토로 볼 수 없기에 동맹국인 한국이라도 행동에 나서야 할 의무는 없는 셈이다. 게다가 나중에 추가된 3조 관련 양해사항은 "타방국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을 제외하고는 그를 원조할 의무를 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돼 있다. 원조 의무도 없음을 확실히 한 것이다. 
 

지난달 8월 중국군은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한 불만 표시로 대만해협에서 포사격 훈련을 실시하는 등 대규모 무력 시위를 벌였다. 연합뉴스

일방적 차출, 일본 "노", 한국 "예스" 
 그렇다면 미국이 대만 방어를 위해 일방적으로 주한미군을 차출하는 것은 가능할까. 지난달 27일 패트릭 라이더 미 국방성 대변인은 주한미군의 대만 투입 가능성을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주한미군은 여전히 한미동맹과 한국의 주권을 수호하고 역내 미국의 국익을 지원하기 위해 전념하고 있다"고. 차출하겠다는 건지 안 하겠다는 건지 모호하다. 
 하지만 현직과는 달리 전 고위직 인사들은 분명하게 의견을 나타낸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달 27일 “중국의 대만 침공 시 주한미군 투입이 가능한가”라는 자유아시아방송(RFA)의 질문에 "그렇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떤 병력을 활용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미국"이라며 "주한미군 일부가 투입되더라도 한미동맹은 대북 억지력을 유지할 옵션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는 지난 2014년 7월 참의원에 출석해 "한반도 유사시 주일미군 기지에서 미국 해병대가 출동하려면 일본 정부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대만 해협에서 충돌이 일어나 주일미군이 출동하려 해도 일본 정부가 승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내용이 맞는다면 미국이 주한미군을 동원할 때는 마음대로 해도 되지만 주일미군은 일본 정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과연 그런가.
 먼저 대만 유사시 미국의 결정으로 주한미군 투입이 가능하다는 에이브럼스 전 사령관의 이야기는 근거가 있는 주장이다. 한·미 양국 간에 주한미군 차출을 통제할 어떤 협정 등을 맺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라크 분쟁 때에도 주한미군 차출 문제를 둘러싸고 국내에서도 찬반 논쟁이 뜨거웠다. 그러나 미국은 2004년 5월 주한미군 4000명을 이라크에 보내겠다고 사실상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이를 실행했다. 이를 막을 수단이 없는 한국 정부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주일미군은 다르다. 미국과 일본 간에는 "주일미군의 배치 및 주요 장비와 관련된 주요 변화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합의가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일안전보장조약 재협상이 한창이던 1960년 당시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총리와 크리스천 하터 국무장관 간 서한을 통해 성사됐다. 결국 주일미군을 대만으로 차출하기 위해서는 일본 정부의 사전승인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사실이다.

일본 내 주일미군 요코스카(橫須賀)기지에 배치돼 활동 중인 미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 연합뉴스

 
실제론 주일미군 동원 가능성 커
 상황이 이렇다고 해서 미국이 주일미군은 빼내지 못해 주한미군을 대만으로 보낼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전통적인 대만과의 각별한 우호 관계로 중국 침공시 도와야 한다는 분위기가 일본에 강한 까닭이다. 아베 전 총리가 테러로 숨지기 석 달 전인 지난 4월,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 르 몽드에 "미국은 전략적 모호성을 끝내고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군사적으로 개입할 거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글을 잇달아 기고한 것도 이런 기류를 반영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대만인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 시 일본이 파병해 도와줄 것으로 예상한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58%에 달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러니 일본 측은 미국이 주일미군을 대만에 파견하겠다고 하면 이를 승인할 게 거의 확실하다.
 이에 비해 한국 정부는 윤 대통령의 발언에서 보듯, 주한미군의 대만 차출에 거부감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우선 주한미군의 일부를 대만으로 보내면 대북 억제력에 공백이 생기기 때문이다. 한국이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평택에 미군 기지를 지어주고 매년 3조원에 가까운 한미 방위비 분담금을 내는 것도 북한의 위협에서 지켜 달라는 게 목적이다. 게다가 주한미군이 대만해협 분쟁에 투입될 경우 이들의 주둔지인 한국도 중국의 공격 대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뿐만 아니라 일본과는 달리 대만과의 관계가 극도로 우호적이진 않다는 점도 주한미군 추출의 걸림돌이 될 공산이 크다. 요컨대 주한미군의 대만 차출로 한국이 끌려 들어가는 데 대해 윤석열 정부 측은 달가워하지 않을 거란 얘기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바이든 행정부 측도 지금까진 이를 기정사실로 하진 않고 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지, 이로 인해 미·중 간 충돌이 일어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충돌이 발생하더라도 지금 분위기로는 주일미군이 동원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기존의 한·미, 미·일 간에 맺어진 협정 및 합의로는 미국이 주한미군은 마음대로 동원할 수 있지만 주일미군은 일본 정부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국도 일본처럼 주둔 미군의 차출을 막을 수 있는 재량권 확보가 바람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