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의 무역수지는 37억7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4월부터 내리 적자로, 6개월 연속 마이너스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이다. 다만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지난 8월(94억9000만 달러)과 비교해 크게(60.3%) 줄었다. 이에 연간 누적 무역수지 적자는 288억7600만 달러로 96년의 연간 최대 적자 기록(206억 달러)을 훌쩍 넘겼다. 이런 가운데 올해 무역적자가 96년 역대 최대 적자의 두 배가 넘는 480억 달러에 달할 거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이날 발표한 ‘2022년 무역수지 전망 및 시사점’에서 올해 하반기 무역수지 적자는 374억5600만 달러, 연간으로는 적자 규모가 48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물량 측면에서는 흑자지만, 수입단가 상승 폭이 수출단가 상승 폭을 크게 웃돈 탓이라는 게 한경연의 진단이다.
지난달 수출은 574억6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8% 늘며 역대 9월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수출은 2020년 11월 이후 23개월 연속 증가세다. 하지만 수입 증가 폭이 훨씬 더 컸다. 지난달 수입은 1년 새 18.6%나 증가한 612억3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에너지 수입액이 많이 늘어난 게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달 원유·가스·석탄 등 3대 에너지원의 수입액은 지난해보다 81.2%나 늘어난 180억 달러였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공급 불안으로 에너지 가격의 고공비행이 이어진 여파다.
이런 무역적자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일본·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에서도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문제는 한국의 대표 수출품목이 흔들리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 수출의 20%가량을 책임지는 반도체가 심상치 않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은 114억89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7% 줄었다. 지난 8월 26개월 만에 처음으로 역성장(-7.8%)을 기록한 이후 두 달째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산업부는 “인플레이션에 따른 구매력 저하로 스마트폰 등 소비자용 정보기술(IT) 제품의 수요가 둔화하고, D램 가격 하락세와 낸드 공급 과잉 등이 겹친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통계청의 8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반도체 재고는 1년 새 67.3%나 증가했다.
대중국 수출도 넉달 연속 감소…에너지 수입은 81% 급증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트렌드포스는 3분기에 이어 4분기에도 낸드플래시 평균 가격이 15~20%, D램은 13~18%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 수요 부진이 장기화하면 한국 경제에도 타격이 우려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반도체는 달러를 벌어들이는 주력 산업이라 한국의 외환 수급 안정성에 영향을 준다”며 “반도체가 다운사이클(장기 하락) 국면에 접어들었을 때 한국 경제는 위기를 맞곤 했다”고 짚었다.
정부는 당분간 지금과 같은 무역적자와 수출 둔화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대중 무역수지가 5개월 만에 흑자로 전환되고, 9월 무역적자 규모가 전달보다 50억 달러 이상 감소한 것은 의미 있는 변화”라면서도 “글로벌 경기 둔화와 반도체 가격 하락 등을 고려할 때 당분간 높은 수출 증가율을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장관은 이어 “현재 수준의 에너지 가격이 지속할 경우 무역수지 개선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는 현 상황을 매우 엄중히 인식하고 있으며, 민관 합동으로 수출 활성화와 무역수지 개선을 총력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지금의 적자는 높은 수입물가 탓이 크기 때문에 해외 자원개발 활성화 등 공급망 안정을 꾀하면서 해외 유보 기업자산이 국내에 돌아오게끔 유도하고, 주요국과의 통화스와프 확대 등 환율 안정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추 실장은 “국회는 법인세 감세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정부 세제개편안을 조속히 통과시켜 기업들의 채산성 악화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