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가 제주·전주였어? ‘수리남’에 수리남이 없었네

중앙일보

입력 2022.09.2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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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수리남’ 속 차이나타운의 일부는 전주의 오픈 세트장에서 촬영됐다. 김병한 미술감독은 “해외 실제 차이나타운도 고려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평범해서 세트를 만드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만드는 데 150일 넘게 걸렸다”고 설명했다. [사진 넷플릭스]

지난 9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은 스토리와 연기뿐 아니라, 이국적인 남미의 풍광을 고스란히 담아낸 영상미로도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를 완성한 김병한 미술감독은 “수리남은 물론, 다른 남미 국가도 가본 적 없다”고 말했다. 25일 전화로 만난 김 감독은 “가보지 않은 곳을 재현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수리남’ 작업을 돌아봤다.
 
‘수리남’ 촬영 당시는 코로나19 확산 한복판이었기에 출국 여부가 불투명했다. 영화 ‘대립군’ ‘PMC: 더 벙커’ ‘백두산’ 등의 미술을 담당했던 김 감독은 “사극이나 북한 배경 작품 등을 거치면서 가보지 못한 공간을 재현하는 노하우가 쌓인 덕분에 ‘수리남’ 작업 때는 국내 세트 촬영을 더 빨리 선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수리남’ 촬영은 2개월 가량의 도미니카 공화국 로케이션 외에는 제주도·전주·무주 등 국내 각지를 돌며 이뤄졌다.
 
해외 촬영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 남미보다 더 ‘남미스러운’ 비주얼을 완성하는 데 물꼬를 터주기도 했다. 김 감독은 “수리남의 건축 양식과 풍경이 생각보다 평범하다”며 “멕시코나 쿠바처럼 강렬한 라틴 느낌의 색채를 차용해 실재하지 않는 느낌을 ‘퓨전식’으로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차이나타운은 200m에 달하는 거리 전체를 150일에 걸쳐 전주의 오픈 세트장에 만들었다. 김 감독은 “차이나타운은 방콕 등에 가서 찍는 것도 고려했는데, 그곳들의 비주얼도 너무 평범했다”며 “1970~80년대 차이나타운 느낌을 살리는 동시에 통제 가능한 세트장을 만드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수리남’ 속 마약왕 전요환(황정민)의 저택 일부는 전주의 오픈 세트장에서 촬영됐다. 김병한 미술감독은 “해외 실제 차이나타운도 고려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평범해서 세트를 만드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만드는 데 150일 넘게 걸렸다”고 설명했다. [사진 넷플릭스]

마약왕 전요환(황정민)의 호화 저택은 외부 진입로는 제주도, 내부 서재는 전주 세트장 등 다섯 군데에서 나눠 찍고, 창과 문·벽 등의 마감재를 통일해 같은 공간으로 보이도록 연출했다. “실내 세트는 아무리 잘 찍어도 가짜 티가 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 자연광을 받을 수 있는 야외 세트를 고집했지만, 의외의 복병은 날씨였다.
 
“비가 오면 작업을 못하는 게 너무 힘들었죠. 세트 위에 샌드위치 패널이나 철제로 간이 지붕을 만들긴 했지만, 비가 새더라고요. 전주 세트장 부지가 영화 ‘기생충’ 저택 세트가 있던 곳이어서 이하준 미술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지붕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물어보기도 했어요(웃음).”
 
자연환경 위주의 촬영이 이뤄진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도 미술감독의 일이 적지 않았다. 강인구(하정우)와 전요환의 호숫가 싸움을 촬영한 현지 국립공원은 “생각보다 빽빽한 밀림 느낌이 안 나서” 나무를 추가로 심었고, 실제 도미니카 대통령궁에서 이뤄진 촬영 때도 “크고 고급스러운 가구가 없어서” 급하게 현지에서 직접 제작했다.
 
도미니카 공화국의 한 교도소에서 촬영할 때도 벽에 적힌 스페인어 글자를 수리남에서 사용하는 네덜란드어로 바꾸는 등의 작업을 해야 했다. 김 감독은 “재소자들이 옆에 와서 ‘사진 찍자’고 하거나 비속어를 쓰는 등 작업을 방해하는 통에 일하는 게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