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징용이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항상 사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해 11월 8일 오후 일본 오카야마(岡山)현.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가 쓰야마(津山)시의 이총(耳塚, 귀 무덤) 앞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날 임진왜란(1592∼1598) 때 희생된 조선인 영혼을 위로하는 진혼제에 참석해 사죄의 뜻을 밝혔다.
이총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베어 간 조선군과 백성의 귀를 매장한 곳이다. 훗날 귀와 함께 코까지 대거 묻은 사례가 드러나 이비총(耳鼻塚, 귀·코 무덤)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이날 임진왜란 당시 숨진 조선인 넋을 기리며 일본 측의 무한 책임을 강조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행한 잔혹한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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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의 잔혹한 일…잊어선 안된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24일 명량해전 무대였던 전남 진도를 찾는다. 이날 오전 10시 진도 왜덕산(倭德山)에서 열리는 위령제에서 추모사를 한다. 그가 지난해 11월 일본 오카야마 이총에서 사죄의 뜻을 밝힌 데 이어 이날 어떤 말을 할지에 관심이 쏠렸다. 왜덕산은 조선 백성이 명량해전 때 목숨을 잃은 왜군 수군 시신을 묻어준 곳이다.
그는 이날 “(임진왜란 때)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대명제국(명나라) 정복을 목표로 원정군을 조선으로 향하게 했다”며 “전쟁 때 돌아가신 많은 영혼에 진혼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원점이라고 이해했다”는 취지의 추모사를 할 예정이다.
왜덕산에 대해서는 “명량해전 때 죽은 일본 수군을 진도 주민 여러분이 수습해주신 것에 감사드린다”며 “'일본 수군에 덕을 베풀었다' 의미로 ‘왜덕산’이라 이름 붙여진 것도 기쁘다”고 밝힌다.
명량대첩 때 숨진 왜군 무덤 ‘왜덕산’
“왜덕산에 왜군이 묻혀 있다”는 이야기는 200여 년이 흐른 2002년 진도주민 이기수씨 증언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진도 주민은 "임진왜란 당시 진도 해안으로 밀려온 왜군 시신을 보고 ‘시체는 적이 아니다’라며 수습해줬다"며 무덤이야기를 전했다. 이후 명량대첩 당시 숨진 일본 구루시마 수군 후손인 현창회(顯彰會) 회원 등이 왜덕산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박주언(77) 진도문화원 원장은 “이기수씨 증언을 토대로 인근 주민을 설득한 끝에 왜군 무덤을 확인했다”며 “왜덕산 말고도 왜군 무덤이 인근에 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3척 VS 133척 ‘대승’…종전에 결정적 역할
임진왜란은 막을 내렸지만 전쟁의 상처는 컸다. 대표적인 게 일본 교토(京都)에 생긴 이비총이다. 왜군이 당시 전리품으로 12만개가 넘는 조선인 귀와 코를 가져가 무덤을 만들었다. 일본에 있는 이비총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명령에 따라 1597~1598년 일본 곳곳에 만들어졌다. 서애 류성룡이 쓴 『징비록(懲毖錄)』에는 ‘왜군이 조선인만 보면 베어가 코나 귀가 없는 조선 백성들이 많았다’는 기록이 나올 정도다.
이에 대해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일본이) 임진왜란 승전의 증거로 조선인 귀와 코를 잘라와 묻은 귓총, 비총이 교토와 요코하마 등 각지에 있는 데 이는 만행의 증거”라며 “그 공양을 드리는 것이 과거의 사과와 함께 미래를 향한 한일관계가 개선돼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귀무덤, 임진왜란 후 일본 곳곳에 생겨
당시 행사를 주도한 일본의 시민단체 ‘교토에서 세계로 평화를 퍼뜨리는 모임’도 한·일간 평화를 기원했다. 이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조선 출병의 희생이 된 조선반도 사람들의 영혼을 애도하며 공양을 올립니다”라는 내용의 위령비를 세웠다.
진도서 양국의 화해·평화 기원
일본 수군의 무덤인 왜덕산에서 직선거리로 4㎞가량 떨어진 곳에는 ‘정유재란 순절묘역’이 있다. 정유재란 당시 숨진 조선 병사들이 묻힌 무덤이다. 현재 묘역에는 232기의 무덤이 있으며 일부 문중의 묘지 16기 외에는 모두 주인이 없다. 진도문화원 측은 이 무덤들이 정유재란 말엽인 1597년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425년 전 명량대첩, 30일 CG로 재현
기존 명량대첩축제는 명량대첩 해상전투를 어선 수십척을 동원해 바다 위에서 실제로 재현해왔다. 이때 어선 61척에서 쏘아대는 화포와 불꽃 등이 압권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올해는 주무대에 설치한 가로 20m 세로 5m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컴퓨터그래픽스(CG)로 제작한 해상전투 장면을 상영하는 방식으로 재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