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여성 역무원을 살해한 30대 남성 A씨는 이번 사건 이전에도 피해자를 스토킹한 혐의로 기소돼 불구속 상태로 재판 중이었다. A씨는 살인에 앞서 강요와 협박이 포함된 300통 이상의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피해자에 보내는 등 스토킹 행각을 벌여온 것으로 파악됐다. 그런데도 법원이 경찰의 1차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고, 경찰은 2차 구속영장 신청을 하지 않아 결국 피해자를 A씨의 범행으로부터 보호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스토킹 처벌법 시행됐지만…구속 수사율 3.6%”
스토킹 범죄와 관련된 구속률은 현저히 낮은 편이다.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지난해 10월 21일부터 이달 6일까지 총 7083명이 검거됐고 이 가운데 253명이 구속됐다. 구속 수사율은 3.6%다.
스토킹 범죄자의 구속률이 낮은 이유로는 법원이 스토킹을 중범죄로 인식하는 사례가 소수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뒤를 따라간다거나, 집 앞에서 기다린다거나, 메시지를 보낸다거나, 물건을 두는 행위 등이 스토킹의 대표적인 사례다. 성범죄 전담 검사 출신의 이승혜 변호사는 “스토킹이라는 게 정신적으로 심한 고통을 주지만, 아무래도 신체에 대한 직접적 위해는 거의 없다 보니 중범죄라는 인식이 적다”며 “짝사랑, 애정이라고 포장되는 경우도 있어 스토킹만으로 구속이 이뤄지는 것은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스토킹의 특성상 강력 범죄로 비화하기 쉽다는 점도 구속 수사의 필요성에 무게를 싣는다. 장윤미 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스토킹 가해자의 감정이 제어가 안 되는 경우를 상당히 많이 본다”며 “여기에 보통 스토킹 가해자는 헤어진 연인이거나 직장 동료인 경우가 많다. 인적사항을 손에 넣기 쉬워 직접 가해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보복‧협박하는 스토킹 가해자, 추가 혐의 적용해야”
법원만의 문제만으로는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가해자의 혐의를 제대로 밝히지 않는 경찰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검사 출신인 오선희 변호사는 “사건 수사 중 가해자가 피해자한테 연락해 합의 등을 요구하는 것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상 보복범죄 혐의가 적용된다”며 “합의 요구, 협박 등으로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가 뚜렷해질 때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하면 법원도 구속을 안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구속영장 발부 조건이 달라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해 10월 피해자가 서울 서부경찰서에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한 당시 경찰은 A씨를 긴급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에 법원은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형사소송법 제70조는 구속 사유로 ‘피고인이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도망할 우려가 있는 때’를 명시한다.
한국경찰학회 학회지인 한국경찰학회보의 ‘피해자 신변보호제도 개선에 대한 경찰관의 인식 연구’ 논문에 따르면 경찰은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를 독자적인 구속사유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이 경찰관 3171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2652명(83.6%)이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를 독자적 구속사유로 입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