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3월 한국 정부가 환율 변동제를 도입한 이후 원화가치가 1400원 밑으로 내려간(환율은 상승) 기간은 1997년 12월~1998년 6월과 2008년 11월~2009년 3월 단 두 차례다. 두 번 모두 한국 경제에 혹독한 시기였다. 1997년은 외환위기 그리고 2008년은 금융위기였다.
1997년과 2008년 ‘무슨 일이’
불과 10년 전 IMF 외환위기의 악몽이 생생했던 2008년 한국은 비상이었다. IMF 때 했던 은행 대외채무 지급 보증, 금융권 외화자금 직접 공급 등 정부 대책이 이어졌다. 40조원 한도의 구조조정기금도 조성됐다. 당시 한ㆍ미 통화스와프도 처음 체결됐는데 환율 충격을 잠시나마 진정시키는 ‘한 방’ 역할을 했다.
위기냐 정상이냐의 경계선은 사실 흐릿하다. 초반을 한참 지나 정점에 올라서야 정부도 기업도 위기를 자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97년과 2008년 한국도 그랬다. 하지만 그때도 환율이 1400원대로 진입한 건 IMF 구제금융 신청(1997년 11월), 리먼 브러더스 파산(2008년 9월) 같은 ‘특정한 충격’이 있고 난 후였다.
13년 만에 원화 값 1400원대 눈 앞
이날 방기선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비상경제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주요국의 금리 인상 폭과 속도에 대한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는 점이 국내ㆍ외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높이고 있는 것으로 진단한다”며 “각별한 경계감을 가지고 금융ㆍ외환 시장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시장 안정을 위해 가용한 대응 조치를 철저히 점검해 줄 것”을 지시했다. 경계, 예의 주시, 조치 점검 등 원화 값이 1200원, 1300원을 돌파할 때와 크게 다를 것 없는 단어 선택이었다.
전문가는 현 상황을 심각하게 본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큰 사건 없이 온전히 한ㆍ미 금리 역전, 8월 한국 경상수지 적자 전환 가능성 때문에 환율이 1400원대 가까이로 가고 있다”며 “미국 금리 인상 중단, 국제유가의 대폭 하락, 중국 경기 회복 등 뚜렷한 변화가 있어야 해결 가능한 문제인데 그럴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양 교수는 “정부가 별다른 대응책 없이 사실상 똑같은 내용의 ‘한국 경제가 건전하다’는 식의 발언만 계속하고 있는데, 외환시장을 진정시키는데 한계가 있다”라고 짚었다.
한ㆍ미 금리 역전과 지금의 ‘원저 쇼크’가 장기화한다면 한국 경제는 내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낮은 원화가치가 수출 경쟁력 확대로 연결되는 효과도 더는 기대할 수 없어 불안감은 더 높다. 꾸준히 내려가는 원화 값에 한국 경제가 ‘끓어가는 냄비 속 개구리’ 처지가 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 원화가 다른 통화에 비해 더 두러지게 약세를 보이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이 75bp(1bp=0.01%)씩 금리를 올리는 상황에서 한국은 25bp씩 지속적으로 금리를 인상하겠다고 공언한 게 결정적 패착으로 보인다”며 “한ㆍ미 금리 차이가 계속 나는 데도 금리를 대폭 올리지 못할 만큼 한국 경제 내부 상황이 불안하다는 인식을 해외 투자자에게 심어준 격이 됐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이어 “외환위기나 금융위기와 달리 결정적 사건 없이 환율이 1400원대에 진입하게 됐는데 그런 의미에서 현 상황이 심각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