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 넣고 불꺼라" 에너지 대란에 물리학자가 요리 훈수

중앙일보

입력 2022.09.11 15:00

수정 2022.09.1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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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월 19일 영국 트라팔가 광장 분수에서 한 사람이 더위에 못이겨 머리에 물을 적시고 있다. 올해 영국에선 기록적으로 치솟은 에너지 비용 탓에 폭염에도 선풍기를 돌리지 못하는 가구가 늘었다. AP=연합뉴스

 

“기록적 폭염이었지만 선풍기를 돌리지 않았다”

“매일 회사에서 샤워를 하고 면도를 한 뒤 퇴근한다”

 
유럽에 에너지 공급부족이 심해지면서 공과금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조금이라도 아끼려는 유럽인들이 샤워는 직장에서 하고 생활비 절약을 위해 하루 한 끼 식사만 하는 등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러시아 정부는 지난 5일(이하 현지시간) 서방의 경제 제재에 대한 보복으로 ‘대러 제재’를 해제할 때까지 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폐쇄할 것이라고 밝혀 에너지 소비가 급증하는 겨울철이 되면 유럽인들의 고통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영국에서 가정용 전기·가스 요금 80% 인상될 듯

영국의 한 주택에 설치된 전기 계량기. EPA=연합뉴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유럽 가스 가격의 지표인 네덜란드 TTF는 지난 12개월 동안 550% 급등했다.
 
영국의 에너지 규제기관 오프젬(Ofgem)은 최근 표준가구의 가정용 전기·가스 요금이 10월부터 연 3549파운드(약 560만원)로 80% 인상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가구당 월평균 50만원 가까운 돈을 에너지 비용으로만 지출하게 되는 셈이다.
 
이처럼 기록적으로 치솟은 에너지 비용 탓에 상당수 영국 가구가 생활고를 겪고 있다.
 
영국 동부 그림스비에 사는 필립 키틀리씨는 영국에 기록적 폭염이 강타했던 올여름에도 선풍기를 돌리지 않았다. 또 하루 한 끼만 먹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지난 4월에 직장을 잃고 월 600파운드(약 95만원)의 복지지원금으로 생활하는 그는 로이터에 “은행 계좌의 잔액을 보고 전기요금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며 “생활비는 증가했지만 수입은 에너지 위기 이전 수준이라 식비와 공과금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에너지 위기로 인한 생활고가 심각해지자 영국의 새 수장으로 결정된 리즈 트러스 총리 내정자는 10월부터 가계 에너지 요금 80% 인상 계획을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BBC 등이 보도했다.
 

큰 타격입은 독일 가정…“샤워는 퇴근 전 직장에서”

에너지 가격 폭등에 항의하는 독일 시위대. 로이터=연합뉴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천연가스 가격 폭등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 중 하나가 독일이다.
 
독일 가격 포털 체크24가 수집한 데이터에 따르면 독일 가정의 7월 에너지 비용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또 독일의 평균적인 공동주택 가구에 적용되는 난방유의 5월 가격은 작년 동기 대비 78%나 폭등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북동부 니다에 거주하는 엘칸 에르덴(58)씨는 로이터에 자신이 일하는 생수 공장에서 “매일 샤워를 하고 면도를 하고 퇴근한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상 최고치에 근접하고 있는 가스와 전기 가격이 유럽 소비자들을 빈곤으로 몰아넣고 있으며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들이 줄줄이 공장문을 닫도록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7일(현지시간) 물가 급등으로 인한 서민들의 부담을 낮추기 위해 추진하기로 한 650억 유로(약 88조원) 규모의 지원패키지와 관련해 “3차 지원패키지의 목표는 전기요금을 빠르게 떨어뜨리는 것”이라며 “전기요금 제동장치 도입은 수개월이 아닌 수 주내에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을과 겨울에 에너지난으로 봉기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불길한 예언을 일축했다.
 

에너지를 절약할 요리법 등장…이탈리아서 찬반 논란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 공동 수상자 조르조 파리시 로마 라사피엔차대 교수. EPA=연합뉴스

 
유럽에 에너지 공급부족이 심해지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까지 에너지를 절약할 요리법을 제안하고 나섰다.
 
영국 더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수상자 조르조 파리시(74) 로마 라사피엔차대 교수는 6일(현지시간) 페이스북에 “끓는 물에 파스타 면을 넣고 끓을 때까지 다시 가열한 뒤 냄비 뚜껑을 덮고서 가스 불을 끄거나 최소한으로 줄이라”고 말했다.
 
이는 컵라면 식으로 뜨거운 물에 익히라는 것이다.
 
파리시 교수는 “이 방법으로 에너지를 덜 사용하면서도 기존과 똑같이 파스타를 만들 수 있다”며 “물이 증발하면 열이 많이 손실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냄비 뚜껑을 계속 닫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이런 요리법에 찬반 논란이 가열됐다.
 
이탈리아 파스타 생산자 조합 ‘우니오네 이탈리아나 포드’는 매년 파스타 23.5㎏을 먹는 이탈리아인이 파리시가 제안한 것과 비슷하게 요리하면 에너지를 47%를 절약할 수 있다고 호평했다.
 
그러면서 이탈리아 전체가 1년 동안 이 요리법을 따르면 24년 동안 유럽의 모든 축구 경기장 조명을 밝힐 수 있는 만큼의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탈리아 코모의 인수브리아 대학의 다리오 브레사니니 화학과 교수도 “파스타를 삶는 때 핵심 과정은 전분과 응고된 글루텐이 수분을 흡수하는 것이기에 물을 팔팔 끓일 필요가 없다”고 거들었다.
 
그러나 전문 요리사들은 즉각 반발했다.
 
요리사 안토넬로 콜로나는 “(파스타 면을 삶다가) 불을 꺼버리면 면이 끈적끈적한 섬유처럼 된다”고 충고했다.
 
또 다른 요리사 안토넬로 콜로나는 “파리시가 주방에서는 천재가 아닌 것 같다”며 “최고급 식당에서는 그런 해법을 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요리사 루이지 포마타도 “물리학자는 연구실에서 실험이나 하고 요리는 요리사가 하도록 내버려두라”고 꼬집었다.
 
현재 이탈리아는 최근 높은 에너지 가격으로 고통받고 있다.
 
당국은 지난해 10월 1일부터 올해 9월 30일까지 일반적인 가정의 가스 요금이 1700유로(약 226만원)가량 될 것으로 추산했는데 이는 2020년 10월에서 2021년 9월까지와 비교해 70% 이상 상승한 액수다.
 

‘사회 불안 없애자’ 유럽, 대규모 재정 지원 서둘러

유럽연합(EU) 본부. 로이터=연합뉴스

 
유럽 각국이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가 심각한 사회 불안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대규모 재정이 투입되는 구호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WSJ 등 외신에 따르면 스웨덴은 지난 3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유럽행 가스공급 중단에 대응해 북유럽과 발트해 지역 에너지 기업에 긴급 유동성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핀란드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자국 기업의 파산을 막기 위해 100억 유로(약 13조5000억원)를 지원하겠다고 4일 발표했다.
 
오스트리아도 전력 가격에 상한선을 정해 가계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 상한선은 지난해 가구당 평균 전력 소비량의 80%까지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