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한포기 2만원, 무서워" 추석 앞둔 전통시장, 지갑 못 연다 [르포]

중앙일보

입력 2022.09.07 05:00

수정 2022.09.0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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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충북 청주 육거리시장에서 상인 민병순씨가 채소를 정리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배추 가격 맞냐. 무섭다” 시금치 한 움큼 ‘1만원’ 

추석 연휴를 사흘 앞둔 6일 오전 충북 청주 육거리시장. 대목을 맞은 시장 곳곳은 명절 준비를 하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한 야채 가게 앞엔 ‘강원도 금배추 2만원’이란 종이 팻말이 쓰여 있었다. 주인 민병순(69)씨는 “속이 꽉 찬 배추 한 포기가 그 가격이고, 겉잎이 조금 시든 배추는 1만8000원, 크기가 작은 배추도 1만5000원에 팔고 있다. 장사하면서 배추 가격이 이렇게 비싼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민씨는 “배추는 지난 주말 한 포기에 1만5000원에도 내놨지만, 수요는 많고 생산량은 적다 보니 명절이 다가올수록 가격이 더 오르고 있다”며 “사는 사람도 힘들지만, 마진 없이 팔아야 하는 상인들도 힘든 시기인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날 찾은 육거리시장은 곱절 이상 뛴 배추 가격이 가장 눈에 띄었다. 배추를 비롯한 무·시금치·애호박·열무·아욱 등 명절에 소비가 많은 채소류 가격도 줄줄이 올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5일 기준 배추 한 포기 소매 평균 가격(상품·최곳값)은 1만4500원으로 1년 전 6663원과 비교해 약 2.1배 올랐다.

충북 청주 육거리시장에 있는 한 과일가게에서 제수용 사과와 배를 진열해놨다. 최종권 기자

“애호박전 포기, 묵은김치 먹겠다” 

시금치 1㎏은 같은 기준으로 1.67배, 얼갈이배추(1㎏)는 1.9배, 애호박(1개) 1.6배, 무(1개)는 1.9배로 값이 껑충 뛰었다. 지속한 폭염에 유례없는 폭우가 겹치면서 채소류 생산량이 줄어든 탓이다. aT가 지난달 24일 조사한 추석 성수품 28개 품목 조사에서 올해 차례상 차림 비용은 평균 31만8045원으로, 지난해보다 6.8%(2만241원) 상승했다.
 
안 오른 게 없는 채소류 가격에 손님들은 좀처럼 지갑을 열지 못했다. 한 남성은 “어휴. 이게 배추 한 포기 값이 맞냐. 무섭다. 무서워”라며 혀를 내두른 뒤 그냥 돌아갔다. 시금치는 400g에 1만원에 파는 곳이 많았다. 쪽파는 1.3㎏에 1만원, 무는 1개에 6000원~7000원에 거래됐다.


홍현호(65)씨는 “시금치와 무골파를 조금 샀을 뿐인데 벌써 2만4000원을 썼다. 지난해와 비교해 2배 정도 돈이 더 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성원(68)씨는 “야채값이 너무 올라 명절에 물김치와 애호박전을 하지 않기로 했다”며 “대신 묵은김치를 먹고 음식도 간소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 주민은 한 움큼에 8000원 하는 아욱 가격에 놀라더니 “아욱국은 포기하고, 뭇국으로 대신해야겠다”고 말했다.
 
과일 가게는 제수용으로 마련한 사과·배가 좀처럼 팔리지 않아 울상이었다. 이곳 상인들은 상처가 나거나 크기가 작은 사과는 10개에 1만원, 배는 3~5개에 1만원으로 비교적 싸게 팔았다.  

채소류와 과일 가격 외에도 제수용 과자는 식용유, 밀가루, 설탕 등 원재료 가격 인상으로 소비가를 올렸다. 최종권 기자

상인들 “소비 준 것 체감…파는 사람도 힘들어” 

하지만 제수용으로 매대에 내놓은 사과는 1개에 4000원~5000원, 배는 1개에 5000원 정도로 훨씬 비쌌다. 상인 장모(55)씨는 “제수용은 가격이 부담되다 보니 거의 팔리지 않고 있다”며 “물가가 오르고, 경기가 좋지 않아서인지 소비도 확실히 줄었다”고 말했다.
 
제수용 과자는 설탕과 밀가루·식용유 등 제조 원가 인상으로 가격이 올랐다. 상인 A씨는 “약과는 한 팩에 5000원 하던 것을 원가 상승으로 올해 6000원으로 올렸다”며 “제수용 과자는 제품마다 1000원씩 올렸고, 황태포 등 건어물도 1000원씩 인상했다”고 말했다.
 
나물 가게를 운영하는 소윤호(60)씨는 “고사리와 도라지 가격을 1㎏당 1500원(27~33%)씩 올렸다”며 “이맘때 줄을 길게 늘어서서 나물을 사려는 손님 많았지만, 올해는 매출이 40% 정도 줄 것 같다”고 말했다. 떡집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명절을 대비해 떡을 맞추려는 사람이 해마다 줄고 있다는 게 상인들의 설명이다. 신규식(70)씨는 “송편을 만들려고 예전에는 20㎏짜리 쌀 10포대씩 준비했는데 요즘은 5포대로도 충분하다”며 “당일 날 필요한 만큼 떡을 사 가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추석 성수품 수급 안정을 위해 20대 성수품 공급을 1.4배 확대하고, 유통업계와 연계한 할인행사를 진행 중이다. 배추·무·양파·마늘·감자 등 농산물은 8일까지 3905t을 추가 공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