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세상] (47) '쓰레기 분리 배출, 까다롭게 해야 할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22.09.06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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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매주 티격태격이다. 필자는 대충하자고 하고, 아내는 하나하나 꼼꼼하게 구분해서 배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주례 행사인 일요일 쓰레기 분리 배출 얘기다.
 
아내를 이길 수 없다. 스티로폼에 붙어있는 종이 스티커는 반드시 떼어야 하고, 콜라병과 뚜껑은 분리해서 버린다. 종이박스는 해체해 노끈으로 묶어 내놓아야 한다. 음식물 쓰레기가 일반 쓰레기에 썩이면 절대 안 된다.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다.
 
'다들 대충인데, 우리만 이런다고 뭐 달라지나?'
 
이런 생각이 안 드는 게 아니다. 그런데 조금 귀찮아도 하고 나면 정신이 말끔해진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안도감이다. 잘 분리된 쓰레기는 보기에도 좋다. 지구 환경 지킴에 동참했다는 작은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쓰레기 분리 배출, 그건 마땅히 해야 할 선(善)이었다.
 
天下興亡, 匹夫有責
천하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 모두의 책임이다.
 
쓰레기 분리 배출은 거창하게 말하자면 지구를 살리는 길이다. 후대에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을 남겨주는 일, 당연히 필부의 책무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꼼꼼히 해야 마땅하다.  
 

쓰레기 분리 배출은 조금 귀찮아도 하고 나면 정신이 말끔해진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안도감이다. 그건 마땅히 해야 할 선(善)이었다. 출처 셔터스톡

오늘 얘기 주제는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지나침'이다.
 
주역 62번째 '뢰산소과(雷山小過)'를 뽑았다. 우레를 상징하는 진(震, ☳)이 위에 있고, 산으로 대표되는 간(艮, ☶)이 아래에 있다. 산 위에서 우레가 치는 형상이다.  
 

주역 62번째 '뢰산소과(雷山小過)'는 산 위에서 우레가 치는 형상이다. 출처 바이두백과

상상해보자. 혼자 산에 올랐다. 정상에 다다랐을 무렵 갑자기 우레를 만났다. 번쩍번쩍 번개가 치고 우르르 쾅쾅 천둥이 운다.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쏟아질 기세다. 어찌해야 할까. 바짝 엎드려야 한다. 바위를 찾아 아래로 숨어 자세를 낮춰야 한다.
 
지나치게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 다만 나 스스로 약간 과장됐다 싶을 정도로 삼가면 된다. 조금(小) 지나치다(過) 싶을 정도도 행동하는 것, 그게 바로 '소과(小過)' 괘의 세계다. 쓰레기 분리 배출 때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괘사(卦辭)는 이렇게 시작한다.  
 
小過, 亨, 利貞
'다소 지나침'은 형통하다. 올바름을 굳게 지켜라!
 
'과도한 게 어떻게 형통하지?'라는 의문이 든다. 뒤에 붙은 조건을 봐야 이해가 간다. '올바름을 굳게 지켜야 한다(利貞)'는 것이다. 종합하면, 괘가 주려는 메시지는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그릇된 것을 바로잡고, 올바름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면 다소 지나쳐도 괜찮다!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꼼꼼한 쓰레기 분리 배출, 이건 형통한 것이다. 왜냐? 올바름을 구현한 선(善)이었기 때문이다. 깨끗한 공기, 맑은 물을 후대에 물려주는 것은 필부의 책무 아니던가. 지나쳐야 마땅하다.
 
괘의 모습에서 사람의 길을 풀어내는 대상(大象)은 이렇게 말한다.
 
君子以行過乎恭, 喪過乎哀, 用過乎儉
군자는 이로써 행동함에 있어 공손함을 과도하게 하고, 상례를 치르는데 슬픔을 과도하게 하고, 재물을 씀에 있어 검소함을 과도하게 한다.
 
세상이 온통 향락에 빠져 절제를 잃었다. 죽음을 대하고도 슬퍼하지 않을 정도로 인심은 메말라가고 있다. 이럴 때 리더는 세상의 그릇된 분위기를 바로잡기 위해 나서야 한다. 그때 필요한 게 '작은 과도함(小過)'다. 상갓집에 가서 다소 과도한 몸짓으로 슬픔을 표현해야 한다. 솔선수범해서 인색하리만치 아껴야 한다. 자린고비 행세라도 해야 한다.  
 
요즘으로 치면 이런 식이다.  
 
회사 분위기가 조금 풀어진다 싶더니 회사 직원들의 출근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있다. 이럴 때 부장은 출근 시간 30분 전에 미리 나와 앉아 있어야 한다. 출근하면서 부장 눈치 보는 것도 하루 이틀, 직원들은 스스로 출근 시간을 당긴다. 규율은 자연스럽게 잡혀간다. 그게 바로 '작은 지나침'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니 형통하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시도 때도 없이 과도하면 안 된다. 괘사를 설명한 단사(彖辭)는 이렇게 말한다.
 
過以利貞, 與時行也
과도함으로 올바름을 지키니, 시의에 맞게 움직인다.
 
과도함이 좋을 리 없다. 공자(孔子)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큼이나 좋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주역이 '작은 지나침'을 긍정하고 나선 것은 그릇된 것을 바로잡기 위함이다. 왼쪽으로 굽은 쇠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조금 과도하게 힘을 가해 오른쪽으로 밀어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 타이밍을 봐야 한다. '작은 지나침' 만으로도 그릇된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 때 행동에 나서야 한다. 쇠가 굽었을 때만 유용하다. 유능한 부장은 어느 타임에 직원들 근무 기강을 죌지 잘 안다.
 
일이 커지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너무 일이 커지면 '작은 지나침'이 통하지 않는다. 괘사는 이렇게 말한다.
 
可小事, 不可大事
작은 일에서는 통하지만, 큰일은 통하지 않는다.
 
작은 일(小事), 큰일(大事)의 구분을 잘 알아야 한다. 내 역량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작은 일이다. 그러나 내 범위를 넘어선 문제라면, 그건 큰일이다.  
 
'작은 지나침'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문제를 바로잡는 데에만 유용하다. 쓰레기 분리 배출이나, 직원들보다 30분 일찍 출근하는 게 큰일은 아니다. 나만 바꾸면 일이 풀릴 문제다.
 
그러나 문제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영역으로 커져 있을 때는 통하지 않는다. 지구가 망가졌는데 쓰레기 분리 배출하면 뭔 소용이 있겠는가. 분위기 악화로 회사가 적자에 빠진 후라면 부장이 아무리 일찍 출근한다 한들별 효과가 없다. 일을 키우지 말라는 얘기다. 다소 지나치더라도 초동 단계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작은 과도함'은 문제가 커지기 전 단계(小事)에서만 용인된다. 반드시 그릇됨을 바로잡기 위해서만 가능하다. 그것도 큰 과도함이 아닌 작은 과도함으로 말이다. 출처 바이두

나라 다스림에도 '작은 과도함'이 필요하다. 군왕의 효라는 제5효효사에는 이 말이 나온다.
 
公弋取彼在穴
공이 주살을 이용해 구멍에 있는 놈을 쏘아 잡아 올린다.
 
글자 '弋(익)'은 끈이 매달려 있는 화살이다. 구멍에 있는 짐승이나 물고기를 잡아 끌어올리는 데 유용하다. 이 말은 '왕(公)이 구멍을 파고 숨어있는 나쁜 놈을 콕 집어서 도려낸다'라는 뜻이다.
 
다소 과도한 면이 있다. 공자도 "물고기를 잡을 때는 그물을 사용하지 않고, 잠자는 짐승에게는 주살을 사용하지 않는다(子釣以不網, 弋不射宿)"고 했다(논어 술이편). 그런데도 주역은 주살을 사용해 악의 근원을 철퇴하라고 했다. 세상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면 다소 과도한 면이 있더라도 보다 엄격히 대하라는 얘기다.
 
국가를 이끄는 리더라면 그래야 한다. 사회악의 근원을 뽑아버리고, 악의 원천을 막아버리기 위해 과감하게 나서야 한다. 다소 지나치더라도 마땅히 리더가 할 일이다. 그 과도함이 사회 분위기를 살린다면 말이다.
 
그렇다고 과도함이 항상 그런 상태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과도함은 극복되어야 한다. '소과' 괘의 여섯 번째 효는 이렇게 말한다.
 
弗遇過之, 飛鳥離之, 凶, 是謂災眚
적당함을 벗어나 과도하니, 새가 멀리 떠나는 듯 흉하다. 이를 재앙이라고 한다.
 
'새가 떠난다'는 건 과도함이 상도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치에 맞지 않는 과도함이다. '그릇됨을 바로잡아야 한다'라는 본래 목적에서 한참 벗어나 개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과도하게 나서는 경우다. 그런 과도함은 재앙을 부를 뿐이다.
 
분명하게 정리하자.  
 
'과도함'은 문제가 커지기 전 단계(小事)에서만 용인된다. 반드시 그릇됨을 바로잡기 위해서만 진행되어야 한다. 그것도 큰 과도함이 아닌 작은 과도함으로 말이다.
 
그것도 많다. 쓰레기기는 꼭 분리 배출되어야 하고, 초등학교 앞에서는 무조건 천천히 가야 한다. 기업은 내일을 위해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정부는 세금 헛되이 쓰이지 않도록 지나칠 정도로 행정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폭우에 서울 강남역 다시 수해 입지 않도록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지하에 저수시설 만들어야 한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미리미리 단속하고, 보강해야 한다.
 
작은 것을 바로잡지 않고는 어떠한 큰일도 해낼 수 없다.
 
한우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