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서술에서 문헌 자료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꼭 기억해야 할 점은 기록된 역사가 완전하지는 않으며, 살아남은 역사 기록은 대체로 승자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기원전 91년 사마천이 완성한 『사기』를 시작으로 역대 중국의 역사서는 중화 중심주의에 따라 중국이 조공(朝貢) 질서의 종주국이란 입장을 고수하며 주변 민족과 국가에 대한 차별과 폄하를 담고 있다.
김해 택지개발하며 고인돌 훼손
춘천 청동기 유적에 유원지 지어
총리실이 조사해 대책 내놓아야
춘천 청동기 유적에 유원지 지어
총리실이 조사해 대책 내놓아야
일본의 『고사기』와 『일본서기』는 근거 없이 1000년 정도 연대를 올려 짜깁기한 사서다.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을 주장하며 한반도 동남부가 고대 일본의 식민지였다며 왜곡을 일삼았다. 일제 조선총독부는 조선사편수회를 통해 전국에서 고문헌들을 조직적으로 수거·은닉했는데, 우리는 아직도 그 행방을 모른다. 그들이 세운 식민사관과 반도 사관은 삼국시대 이전의 상고사를 삭제하고 한민족 역사를 한반도로 축소했다.
식민지인 한반도의 역사가 결코 ‘위대한 일본’을 앞설 수 없다는 우월성을 강조하며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했다. 그 와중에 찬란했던 우리 민족의 청동기시대, 즉 고조선 시대가 역사에서 지워졌다. 한국 역사학계는 아직도 일본이 남긴 식민사관과 반도 사관의 수렁에 빠져 상고사를 부정하는 학자들이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지식의 중심은 권력의 중심과 일치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도 신라계 인물들이 신라 중심으로 집필한 역사서들이다. 당시 고대 문헌 사료들이 남아 있었으나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이렇게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고고학적 발굴 결과의 축적, 문헌 기록과의 치밀한 대조, 누구도 부정 못 할 수준의 통섭적 학문 연구 결과가 절실하다. 남북이 분단된 상황이니 대한민국 땅에서라도 고고학적 발굴은 하나하나가 너무나 소중하다.
최근 경남 김해 구산동의 청동기시대 고인돌 유적이 택지 개발 와중에 일부 훼손됐다는 소식은 개탄스럽다. 무게 350톤의 ‘세계 최대 고인돌’이라는데 규모나 주변 환경을 살펴보면 지도자급의 묘역이다. 김해와 부산 일대의 선사시대 문화를 밝히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김해 고인돌 훼손 사태는 강원도 춘천의 중도 유적 훼손에 비하면 비교가 되지 않는다. 중도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기원후까지, 즉 신석기부터 지속한 대규모 유적지다. 취락지·농지·묘역·해자 등을 포함하고 있다. 최대 5500명이 모여 살았던 청동기시대 도시 유적의 존재도 드러났다. 강원도가 이곳에 레고랜드를 만들면서 이렇게 소중한 고고학적 보고를 대대적으로 훼손한 행태는 참으로 어이가 없다. 문화 유적 파괴는 문명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야만적 행태다.
김해와 춘천의 유적 훼손 사태를 지켜보며 의구심이 든다. 문화재청이 지자체 중심의 정치·경제적 힘의 논리와 압박에 밀리는 것 같다. 문화재청 산하 문화재위원회가 제구실을 못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문화유산보존법은 지자체 단위의 문화재보호 규정의 상위법인데도 작동하지 못하는 것 같다. 총리실이 조사특위를 구성해 김해와 춘천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밝혀야 한다. 근본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동시에 최대한 원형을 복원할 방안을 제시하길 바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홍남 이화여대 명예교수·전 국립중앙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