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서 보육원 출신 남녀 청년 2명 극단적 선택
25일 광주 광산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오전 7시17분쯤 광주 광산구 한 아파트에서 A양(19)이 숨진 채 발견됐다. A양은 "삶이 고단하다. 최근 친구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았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겼다. 경찰은 A양이 사고 당일 오전 2시쯤 자신이 살던 아파트 고층으로 올라간 것으로 미뤄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사 결과 A양은 해당 아파트에서 장애가 있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부모 모두 장애인이어서 어린 시절부터 보육시설에서 생활해오다 만 18세가 되던 지난해 2월 시설에서 나와 아버지가 살던 임대아파트로 들어갔다.
A양 부녀는 그간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연금 등으로 생활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A양은 지난해 광주 한 대학에 입학했으나 도중에 그만뒀다고 한다. 경찰은 "A양이 평소에도 삶을 비관했고, 우울감을 호소했다"는 지인 등의 진술을 확보했다.
"다 읽지 못한 책 많은데" "삶이 고단" 글 남겨
경찰에 따르면 올해 이 대학에 입학한 B군은 지난 6월 보육원을 나와 대학 기숙사로 옮겼다. 부모 불화로 세 살 때부터 보육원에서 생활한 지 15년 만이다. '보호 연장'을 신청해 보육원과는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B군은 여름방학을 맞아 동급생 대부분이 집에 가면서 사고 당일 기숙사 방에 홀로 남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B군 방에선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이 많은데' 등의 글이 적힌 쪽지가 나왔다. 보육원 관계자 등은 경찰에서 "B군이 보육원을 나올 때 받은 지원금 700만 원 대부분이 바닥나 고민했던 것으로 안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와 관련, 강기정 광주시장은 이날 브리핑을 열고 "시설에서부터 보호 아동과 지역이 함께하는 맞춤형 사업을 추진하겠다"며 "공공기관과 아동보호시설 간 동행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지역 사회와 함께 심리 치료, 건강, 체육 등 아동 성장과 심리 안정을 위한 프로그램을 발굴해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보호종료아동의 자립을 위해 민선 8기 임기 내 전담 주거 시설을 현재 90호에서 150호로 늘리고, 보호 종료 시점부터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고 자립 전담 기관 인력을 확충하는 내용을 담은 방안도 발표했다.
부모 이혼·사망 등으로 가정이 깨졌거나 학대에 시달린 아이들은 가정 대신 시설에서 국가의 보호를 받다 만 18세가 되면 자립해야 한다. 2019년 아동복지법이 개정되면서 본인이 원하면 24세까지 시설에 머물 수 있지만, 보호 기간을 연장하는 경우는 절반에 그친다고 한다.
"돈·주거·일자리는 기본…가족 대신할 시스템 필요"
자립준비청년 4명 중 1명은 퇴소 후 시설 관계자와 연락을 끊어 소재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사후관리 대상자 1만2796명 중 연락이 두절된 자립준비청년은 3362명(26.3%)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자립준비청년들이 '홀로서기'에 성공하려면 경제적 뒷받침 외에 가족의 역할을 대신해 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윤찬영 전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육원에서 나온 청년들에게 돈과 주거·일자리 등은 기본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돈을 어떻게 모으고 쓰는지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만 18세가 됐으니 자립해'라고 목돈(자립정착금)을 주는 것은 '폭탄'이나 '독약'을 주는 것처럼 위험하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해 보육원에 맡겨진 아이들에겐 재정적 책임을 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모와 가족이 없다는 게 본질"이라며 "행정에서 복지관 등 민간 자원을 활용해 자립준비청년들이 독립할 때까지 일종의 결연 사업을 통해 부모나 형제·자매처럼 가족 역할이 잘 이뤄지도록 도와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