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다시 배우는 인구 문제
1930년대 출산율 최저로 떨어져
초당파 인구위원회서 해법 모색
가족·복지 통합모델로 흐름 바꿔
‘두 돌보미와 맞벌이’ 제도 확립
프랑스도 범국가 가족회의 한몫
정관계·민간·노사 전방위 협력
초당파 인구위원회서 해법 모색
가족·복지 통합모델로 흐름 바꿔
‘두 돌보미와 맞벌이’ 제도 확립
프랑스도 범국가 가족회의 한몫
정관계·민간·노사 전방위 협력
스웨덴의 오늘날 인구동태는 경제·사회·문화 구조의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다. 19세기 말부터 반세기에 걸친 출산율 추락 위기(그래픽 참조)에서 초당파 국가연구위원회가 마련한 인구 정책 백년대계가 대반전의 주춧돌이 됐다. 시침을 100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출산 장려파 vs 제한파 대립
뮈르달 부부의 정책 제안 수용
뮈르달 부부의 저출산 진단과 처방은 스웨덴 인구 정책의 새 지평을 열었다. (훗날 군나르는 노벨 경제학상, 알바는 노벨 평화상을 받는다.) 1935년 사민당 정부의 인구위원회 발족의 촉매가 됐다. 스웨덴은 특정 정책을 놓고 관련 사회단체와 정당 대표, 전문가가 모여 정책 보고서를 내는 초당파 국가연구위원회 제도를 운용해왔고, 인구위는 그중 하나였다. 군나르 뮈르달이 포함된 9명의 인구위는 1938년까지 활동하면서 모두 17개의 정책 보고서를 냈다. 1937년 의회는 ‘엄마와 아기들 회기’로 불릴 정도였다.
인구위의 정책 제언은 상당수가 제도화했다. 출산 전후 산모와 신생아에 대한 무료 진료, 다자녀 가구 조세감면 확대, 출산수당 도입, 무상급식 시행, 피임방지법 폐지와 낙태법 개정, 취업 여성고용 보호 입법이 이뤄졌다.
스웨덴 정부는 후속 조치로 1941~46년 인구연구위원회를 설치했다. 두 국가연구위 활동을 통해 스웨덴 가족, 복지정책의 기틀이 잡혔다. 보편적 아동수당, 현물 급여 중심의 지원과 더불어 출산·보육을 사회 책임으로 보는 규범이 확립됐다. 산업화가 늦었던 스웨덴이 저출산의 대반전을 이루고, 복지 모델의 한 전형을 구축한 데는 1930~40년의 인구 백년대계를 빼놓을 수 없다. 인구 정책은 경제·산업·복지·교육·문화 정책의 총화다.
양성 평등 정책 지속적 실천
- 1930~40년대 스웨덴 상황은.
- “오늘날 스웨덴 복지 국가의 토대를 만든 당시 정책들은 스웨덴이 농업경제에서 산업경제로 전환하면서 생긴 사회적·경제적 불확실성에 대응해 이뤄졌다. 정책 패키지는 노조와 사회민주당이 주도했다. 1930년대의 경제 불황은 출산율 저하 기간과 겹쳤다. 경제가 회복하면서 출산율도 보다 정상적인 수준으로 돌아왔다.”
- 이후 인구정책은 어떻게 전개됐는가.
- “사회·가족 정책은 1950~60년대 스웨덴 경제가 호황을 누리면서 보다 관대해졌다. 70년대 들어서며 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정책도 더 야심만만해졌다. 당시 정책들은 성 평등을 촉진하고, 엄마가 된 여성을 소득자로 지원하는 명확한 목표를 가졌다. 80년대에도 성 평등 장려 정책을 계속했고, 남성이 육아에 더 많은 책임을 지는 쪽으로 정책의 초점을 바꾸었다. 스웨덴의 상대적으로 높은 출산율과 여성의 높은 노동 참여는 ‘두 돌보미와 맞벌이(dual carer-dual breadwinner)’ 모델과 맞물려 있다.”
- 현재 스웨덴의 인구동태를 어떻게 평가하나.
- “스웨덴은 보다 균형 잡힌 연령 구조를 갖고 있다. 이는 여성 한 명이 약 두 명의 자녀를 낳는 인구 치환 수준의 출산율이 한 세기 동안 지속한 결과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스웨덴과 이웃 나라들의 출산율이 감소하고 있는 만큼 상황은 바뀔지도 모른다.”
- 한국은 다양한 출산 장려 정책을 펴고 있지만 합계출산율은 세계 최저다.
- “한국 숫자는 매우 극단적(dramatic)이다. 국제적으로 비교해도 예외적이다. 현재의 한국 정책은 (저출산 문제에) 모두 도움이 되지만 지속 가능한 ‘두 돌보미와 맞벌이’ 모델을 위해선 세 가지 영역에서 사회가 변화해야 한다. 각종 가족 정책에 대한 지지가 필요하고, 가정에서 성 평등을 신장해야 한다. 사업주가 어린 자녀를 둔 부모가 다소 짧게 일하고, 때로는 집에서 아픈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것을 당연시하는 업무 환경이 더 허용돼야 한다.”
각개약진 전문가 집단의 한계
스웨덴의 인구위원회 발족은 프랑스가 1939년 상원에 ‘인구문제고등위원회’를 설치해 가족에 대한 물질적 원조로 출산을 장려하는 ‘가족법전’을 제정한 것을 연상시킨다. 1982년 이래론 프랑스의 총리, 관계 장관, 상·하원 사회문제위원장, 전국가족협회연합, 가족수당기금, 지자체, 노사 대표 등이 참가하는 전국가족회의(현 가족·아동·고령자 고등평의회)가 가족 정책의 주요 역할을 맡아왔다.
스웨덴과 프랑스 제도는 관료와 전문가 중심의 우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궤를 달리한다. 두 나라는 정당, 이해상관자, 전문가가 함께하는 만큼 합의사항의 입법화 문턱이 낮다. 대책도 전방위적이다. 반면 우리는 아이디어와 문제 제기의 점(點)은 숱하지만, 점을 선(線)으로 잇기가 어렵다. 각개약진하는 전문가를 아우르고, 입법을 견인하는 틀이 없다. 헌법 격인 인구 정책이 있어야 연금·건보·의료·교육 등 개혁 각론도 힘을 받는다.
인구 정책을 다룰 범국가적 초당파 협의체 구성은 그 자체로 새로운 이정표다. 형식은 여론을 환기하고 내용을 지배한다. 미래 한국이 달린 인구 문제는 5년 넘는 내전적 정치에서 생산적 정치로의 대타협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이대로 가면 우리는 주전자 속 개구리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