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제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최근 국회는 가상자산 관련 업무를 하던 공무원들의 업계(코인거래소) 이직이 잦자 4급 이상이었던 취업심사 대상을 5급 이하로 강화하는 걸 검토하고 있습니다. 사실 공무원의 이직 러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기획재정부 등 이른바 핵심 부처 에이스들이 민간기업으로 옮기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중견뿐 아니라 신참급 공무원 이직도 늘고 있습니다. 지난해 퇴직 공무원 수는 4만5000명이었는데 5년 차 이하가 25%(1만1500명)였습니다. 4년 전보다 많이 늘어난 겁니다.
확 꺾인 공무원 열풍
특히 '젊은' 공무원의 이직이 두드러진다는 게 문제입니다. 지난 3월 한국행정연구원이 MZ세대 공무원의 이직 의사를 물었더니 20대 6~7급 공무원은 44.6%, 8~9급은 43.6%가 이직을 희망한다고 답했습니다. 민간기업 직원들의 이직 의향 비율보다 훨씬 높습니다. 보장된 정년에 연금까지 누리는 철밥통 직장이라 한때 취업 1순위로 꼽혔던 공무원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첫째, 성장기회입니다. 요즘 직장인은 일터에서도 성장을 중시합니다. 단순한 승진이 아니라 전문성을 장착해 노동시장에서 몸값을 올리는 걸 뜻합니다. 이 조직이 내 몸값을 올려줄 수 있느냐, 다시 말해 내가 훌쩍 성장한 미래를 그릴 수 있느냐는 겁니다. 몸값 상승을 위해서는 직무역량 및 전문성 강화가 필수겠지요. 그런데 공무원 업무 대부분은 민간기업과 달리 그 자체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어려운 규제와 허가 등과 관련한 것들입니다. 일을 되게 하기보다 안 되게 하는 업무를 하다 보면 밖에선 값어치가 없는 업무 능력만 키우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지기 쉽습니다. 심지어 순환근무제 탓에 전문성을 높이기도 어렵습니다. 연차가 올라갈수록 채워지기보다 비어간다는 느낌을 받겠죠.
몸값 못 올리는 조직
둘째, 조직구성원 간의 건강한 관계, 즉 자율성입니다. 공무원 조직의 특징인 연공서열에 따른 상명하복,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조직문화 아래서는 조직 논리를 앞세워 개인의 자율을 희생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최적의 업무성과를 낼 수 있는 근무형태를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다 보니 만족하기 어렵죠. 구성원 간의 관계도 문제입니다. 저성과자를 솎아내기 어려워 연공서열로 승진과 보상을 하다 보니 업무 능력은 떨어지고 말 안 통하는 꼰대 상사가 민간기업보다 많습니다. 이런 꼰대 팀장은 요즘 민간기업에서는 살아남기 힘듭니다. 하지만 공무원 조직에선 열심히 일하기보다 사고 안 치고 시간만 때우려는 동료가 상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실력 있는 상사와 동료를 최고의 복지로 여기는 민간기업과 사뭇 다른 상황입니다.
셋째, 워라밸입니다. 과거 공무원이 인기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칼퇴근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마저 여의치 않습니다. 특히 일을 잘하는 에이스일수록 업무량 자체가 많습니다. 경기침체 와중에 정부부채가 크게 늘고 공공기관 부실도 심각하기에 공공기관은 증원은커녕 현상유지도 어렵습니다. 공무원 수 자체는 많지만 저성과자를 퇴출할 수 없는 구조이다 보니 일부에게 업무가 몰려 과로로 급사하는 세종시 공무원 기사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겁니다. 아무리 일이 몰려도 제대로 된 혜택과 보상을 받는다면 모를까 그것도 없습니다.
일 몰려도 보상 없어 동기부여 안돼
제 대학 시절엔 뛰어난 인재들이 공무원이 되려고 행정고시를 많이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가르치는 서울대 경영대 학생들 눈엔 5급 사무관은 더 이상 판·검사나 대형 로펌 변호사, 공인회계사와 동급이 아닙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멸사봉공의 사명감으로 공직에 몸을 던지는 최고의 인재란 지금은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현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 관련 핵심 어젠다 중 하나인 연공주의 혁파와 성과 보상제도의 도입이 시급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