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벼·이스리 품종 ‘녹색혁명’ 일으켜
농촌진흥청은 “통일벼가 주도한 ‘녹색혁명’은 1209번의 도전과 실패가 만든 기적이었다”며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가 선정한 ‘국가연구개발 반세기 10대 성과사례’에 단번에 오른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녹색혁명으로 이룬 식량 확보와 기아문제 해결은 1970년대 이후 눈부신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됐으며, 그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은 세계 최고 수준인 쌀 품종육성의 자산이 되고 있다.
녹색혁명 달성 후 역사적 소명을 다 한 듯 보였던 통일벼는 5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후 지구 반대쪽에서 ‘아프리카형 녹색혁명’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 중 하나이지만 낙후된 농업환경과 기술력 때문에 식량 자급률이 낮아 수입에 의존하고 있던 서부 해안의 세네갈에서 ‘이스리(Isriz)’라는 쌀 품종이 희망의 씨앗이 되고 있다.
이스리의 조상은 통일벼다. 우리나라 연구진은 통일벼 계통의 벼 유전자원 중 아프리카의 환경에 잘 적응하는 계통을 선발해 육성된 8개 품종을 세네갈 등 5개국에 등록했다. 세네갈의 대표 쌀 품종인 ‘사헬(Sahel)’에 비해 단위면적(ha)당 생산량이 2배에 달하는 이스리는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 속 녹색혁명의 주역으로 진화하고 있다.
‘고아미2’는 다이어트에 효과적
안토시아닌이 풍부한 ‘흑진미’와 폴리페놀이 풍부한 ‘적진주2호’ 등 유색미는 항산화 활성이 우수해 노화 예방에 효과가 좋다. 밥용 쌀 외에도 이제는 가공용 쌀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국내 최초의 양조 전용 쌀 ‘설갱’은 맛과 향기가 좋으며 뒷맛이 깔끔한 술을 만들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식량 안보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0.8%밖에 되지 않는 밀의 자급률로는 밀의 수급 불안정 때 심각한 위기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식생활 변화로 쌀의 소비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30만 t 가까운 쌀이 남아돌고 있으며, 매년 밀 200만 t 이상을 수입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쌀 가공 산업을 활성화해 국산 쌀이 밀가루용 수입 밀을 일부 대체하게 해야 한다. 그 첫 단추는 쌀가루용 분질미 품종 육성이다. 농촌진흥청은 밀처럼 물에 불리지 않고 바로 빻아 쌀가루를 생산할 수 있는 ‘바로미2’ 품종을 출원하고 생산성과 재배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재배기술을 확립했다. 우리의 쌀은 이제 국제 식량 위기 등 농업환경 변화에서 우리 쌀 산업을 지켜내는 파수꾼 역할까지 하고 있다.
해들·알찬미 등 우리 품종 개발에 박차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품종 육성으로 우리나라와 세계에 녹색혁명의 희망을 심고 기능성 쌀의 개발로 국민의 건강을 증진하는 동시에 식량 안보에 이바지해온 우리 쌀은 이제 우리의 논을 우리 품종으로 채워가는 진화의 역사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