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확인 결과, 문제가 된 고인돌 정비 업무에는 학예사가 단 한 명도 투입되지 않았다. 문화재계에선 “의사결정 구조나 사업 추진 과정에 학예사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라고 말한다.
구산동 지석묘 관련 업무는 김해시 문화관광사업소 산하 가야사복원과가 담당한다. 그러나 책임자인 과장도 학예사가 아니고, 담당자도 지난해 7월 발령받아 문화재 업무를 처음 접했다. 2020년 12월 공사 계약 이후 1년 반동안 공사가 진행됐지만, 매 주 현장에 방문했음에도 아무도 문제의 소지를 걸러내지 못했다.
이런 학예사 공백이 거침 없는 땅파기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현장의 시공업체는 별다른 추가 설명이 없다면 도면대로 시공한다. 한 학예사는 “문화재 관련 업력이 길고 시공 경험이 많다면, 현장에서 지석묘 하단이 발굴이 안된 걸 보고 일단 멈추고 다시 한 번 확인했겠지만 모든 업체가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경남 지역의 한 학예사는 “문화재 전문가와 시공 업체간의 대화는 수학자와 국문학자의 대화 비슷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한쪽에서는 돌멩이 하나라도 함부로 들어내는 행위는 말할 필요도 없는 금기지만, 다른 한쪽은 하지 말라는 얘기가 없다면 얼마든지 들어낼 수 있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구산동 고인돌의 경우 경남도 문화재위원들은 “문화재 원형을 보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하지만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문화재 전문가(문화재위원)와 시공사 사이에서 연결하고 통역하는 학예사가 없다 보니 문화재를 위한답시고 문화재를 훼손한 초유의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일의 반복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장의 학예사들은 “무엇보다 업무 전문성을 무시한 인사 시스템이 문제”라고 짚었다. 일반직공무원의 경우 1~2년 주기로 순환근무하다 보니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결국 전문성 부족, 문화재청과 지자체 사이의 불통 구조, 문화재에 대해 안일하게 접근하는 인식 문제 등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진 결과란 것이다. 비슷한 일이 앞으로 김해시 아닌 어느 곳에서라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창원대 사학과 남재우 교수는 “문화유산 관련 사업은 학예사의 눈을 한 번이라도 거치는 것이 이상적이고, 팀에 학예사가 있으면 한번 의논을 해보는 게 기본”이라며 “이번 사태는 팀 내 학예사와도 협업이 안된 소통 문제, 인력 부족, 순환하는 직책자의 업무 연속성 부족 등이 한꺼번에 맞물려 나타난 사태”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