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만 해도 달러당 1000원 가까이 떨어졌던 원-달러 환율은 지난 6월 1300원을 넘었다. 10만원 어치 물건을 사도 예전엔 93달러 정도였던 게 이제는 77달러 정도라고 생각하니 지갑을 여는 마음이 훨씬 가벼웠다.
나홀로 ‘달러 스마일’ 언제까지
전 세계 경제가 휘청이는 상황에서, 미국만 홀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른바 ‘달러 스마일’ 현상 때문이다. 달러는 세계 경제가 위기에 처했을 때도, 미국 경제가 좋을 때도 강해진다는 것으로, 모건 스탠리의 통화 전략담당이던 스티븐 젠이 제시한 이론이다.
가로축을 미국 경제 상황, 세로축을 달러 가치로 했을 때, 경제가 매우 나쁜 상태에서 매우 좋은 때로 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양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모습의 곡선을 그린다. 그래서 ‘달러 스마일’이란 이름을 붙였다.
강달러 현상의 이유로 대부분 경제학자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의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을 꼽는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그렇지 않아도 안전자산으로 여기는 미국 채권 금리까지 오르니 전 세계 돈이 몰리는 것이다.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천연가스값이 치솟고 유럽 경제가 타격을 받아 상대적으로 미국 경제가 건전해 보이게 된 것 역시 강달러에 한몫했다”고 케니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경제학)는 분석한다.
개도국은 울상…국가부도까지
하지만 ‘스마일’하는 달러와 달리 세계 경제에는 웃을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달러 가치가 오르면서 다른 나라들은 달러로 진 빚을 갚고 수입한 물건의 대금을 지급하는 데 더 많은 자국 통화를 동원할 수밖에 없게 됐기 때문”(다우다 셈베네 전 국제통화기금 국장)이다.
특히 대외의존도가 높고 자국 통화가치가 급격히 떨어진 개발도상국은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됐다. 지난 5월 달러가 바닥난 상황에서 부채 상환 시기까지 닥쳐 결국 국가 부도를 피하지 못한 스리랑카가 대표적이다.
물론 수출기업 입장에선 원화가치가 떨어지면서 더 싸게 미국 시장에 물건을 내다 팔 수 있어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그래서 현재 한국의 경제 체력이나 외화보유액, 성장률 등으로 볼 때 아직은 과거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상하긴 이르다는 전망도 있다.
김석원 한국은행 워싱턴주재 소장은 “중요한 것은 한국 경제를 믿지 못한 투자 자금이 빠르게 빠져나가느냐 여부인데, 현재는 과거 위기 때와는 다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기침체로 강달러 끝나도 문제
일단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이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깊어진 에너지난이 해소되고, 유럽 경제의 불확실성이 사라져 유로화가 강세로 돌아서면 달러화에 대한 인기가 식을 수 있다.
또 하나는 큰 폭의 기준금리 인상을 이어가던 미국 경제가 결국 침체로 돌아서는 것이다. 많은 경제학자의 예상대로 내년에 경기침체가 오면, 연준은 기준금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미국 내 자산이나 기업에 대한 매력을 잃은 해외 투자자들의 돈이 빠져나가면서 자연스럽게 달러 가치도 떨어지는 시나리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