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와 운용은 주권과 관련된 문제여서 절대 중국 정부의 요구에 밀릴 수 없는 사안이다. 한국 정부도 10일에 이어 11일 사드는 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냈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에 ‘사드’ 단어는 언급 자체만으로 악몽이자 공포다. 중국 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점유율과 영향력이 확 줄어든 결정적 계기가 사드 국내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이었기 때문이다.
사드 또 들고 나오는 중국 정부
5년 전 곤욕 치른 기업들 비상
탈중국 원하지만 당장 힘들어
중국이 손 못댈 제품 만들어야
5년 전 곤욕 치른 기업들 비상
탈중국 원하지만 당장 힘들어
중국이 손 못댈 제품 만들어야
사드 보복 전 중국 시장 점유율이 10%를 넘어 외국계 톱 3에 들었던 현대차와 기아는 또 어떤가. 납품 업체를 현지 기업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는 가하면, 소비자 불매 운동에 교묘한 영업 방해까지 이어졌다. 이때 시작된 점유율 하락은 계속 이어지더니 지난해 2.7%까지 미끄러졌다. 올해는 1%대로 내려앉을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 게임사는 중국 시장에서 서비스할 수 있는 면허를 전혀 발급받지 못했고, 한국 드라마·영화는 중국 TV나 영화관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당시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양국 합작 회사에까지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중국 시장에 왜 계속 매달려야 합니까”라는 필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톱 티어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되겠다면서 세계 최대인 중국 자동차 시장을 어떻게 포기합니까.”
이 말은 한국 기업들이 오만가지 압박과 방해에도 그간 중국 시장 공략을 멈출 수 없었던 이유를 한마디로 표현한다. 이런 일련의 보복 조치는 놀랄 만큼 일사불란하게 이뤄졌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철회해 달라는 한국 기업과 정부의 거듭된 요구에 한 번도 정부 차원에서 보복 조치를 인정한 적이 없다.
5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중국은 한국 기업엔 최대의 수출 시장이다. 전체 수출액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3.4%(5월 기준)로 해외 모든 국가 중 1위다. 하지만 이전까지의 수출 텃밭 역할은 이제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아니, 중국 수출이 너무 빠르게 줄어드는데, 중국만 한 대체시장을 아직 못 찾고 있는 것을 한국 무역의 근본적 위기 원인으로 보는 시각이 대다수다. 대중 수출은 지난 5월부터 꺾이면서 4개월 연속 대중 무역수지 적자가 유력하다.
꼼꼼히 살펴보면 그 원인이 더 속상하다. 5년 전 노골적인 중국 정부 보복에 밀리기 시작했던 중국 시장 점유율 하락은 이젠 남 탓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국 기업의 제품 경쟁력이나 브랜드 파워 때문에 한국 제품이 맥을 못 추고 있어서다.
이는 한때 중국 시장을 주름잡던 국내 화장품 업체들 처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6월 중국 온라인 상거래 업체 징둥닷컴이 연 중국의 상반기 최대 쇼핑 행사 ‘618 쇼핑 축제’에서 한국 화장품은 10위권 내에 한 개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수출기업들은 미국이 일본·대만과 함께하는 칩4(4개국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면서 안 그래도 중국 정부가 보복에 나서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형국이었다. 사드 배치 때 같은 보복이 현실화되기라도 한다면, 안 그래도 취약해진 중국 시장에서의 한국 제품 경쟁력은 더 망가질 게 불 보듯 뻔하다.
대만을 보면 시사점이 보인다.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계기로 중국은 대만을 전방위로 압박하는 중이지만, 대만 하이테크 제품의 중국 수출엔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자신들에게 꼭 필요한 제품이기 때문이다. 중국 하이테크 시장에서 대만 제품은 25.2% 비중을 차지해 한국(15.9%)과 일본(7.2%)을 큰 차이로 누르고 있다(2021년 기준).
중국 보복 때도 정부와 민간이 일제히 타격을 가한 한국 제품은 자신들과 한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분야였다. 이러니 중국이 아쉬워하는, 자국에 꼭 필요해서 함부로 할 수 없는 제품을 만들고 팔아야 한다는 점이 자명해진다. 물론 하루아침에 될 건 아니라는데 한국 경제의 고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