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지난달 2493개 중대재해점검 시설을 대상으로 안전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실태조사를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 1월 27일 시행한 이후 서울시가 안전의무 이행 상황 점검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중대시민재해, 모호한 가이드라인 수준”
이중 고용노동부가 총괄하는 중대산업재해는 지침·규정이 고시 형태로 지정되어 있지만, 국토교통부가 관리하는 중대시민재해는 어떤 때 적용되고,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지침이 없다. 유재명 서울시청 안전총괄과장은 “중대산업재해와 달리, 중대시민재해는 모호한 가이드라인 수준이라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중대재해법의 적용을 받는 도급·용역·위탁 기관의 실태를 조사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청은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시 차원에서 기준을 통일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한 세부 평가 기준이 존재하지 않아서다.
중대재해법 시행령 제10조 8호는 ‘중대시민재해 예방을 위한 조치능력·안전관리능력에 관한 평가 기준’과 ‘도급·용역·위탁 업무 시 중대시민재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비용에 관한 기준’을 마련토록 규정한다. 이에 따라 정부가 고시 등을 통해 구체적인 세부지침을 마련해야 하지만, 법 시행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손을 놓고 있다.
평가 기간 다르고 배점도 제각각
현재까지 중대시민재해법을 적용받아 공공기관장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이 처벌받은 사례는 한 건도 없다. 다만 만약 과거 성수대교 붕괴 사건이 지금 발생한다면 서울시장이 책임을 질 가능성이 크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건설공사 발주자(서울시)가 아닌, 도급인(건설사)에게 책임을 묻는데 비해, 중대재해처벌법은 설계·제조·설치 관리상의 결함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인정받을 경우 관리주체(서울시)의 장에게도 책임을 묻기 때문이다.
중대시민재해 관련 평가 규정은 도급업체 선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서울상수도사업본부가 폐기물 처리 용역 입찰에서 E사를 선정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경쟁사 F사가 E사의 기존 재해 발생 전력을 문제 삼아, 상수도사업본부의 재해발생수준 배점이 지나치게 낮다는 민원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서울시의 설명이다.
유재명 서울시 안전총괄과장은 “중대시민재해법이 세부 지침이 없는 만큼, 엉뚱한 기준을 적용해 도급업체를 선정했다가 사고가 발생한다면 추후 중대재해법을 적용받아 기관장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며 “결코 사소하다고 볼 수 없는 안전 문제에 노출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달 12일 국토교통부에 ‘중대시민재해 시행령이 규정한 기준·절차에 대해 고시 등 세부지침을 마련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각 기관이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안전 평가 항목과 평가 절차·방법을 정부가 규정해달라고 건의한 것이다.
이에 대해 박선주 국토교통부 시설안전과 주무관은 “서울시의 요청 사항을 검토 중이지만, 다양하고 광범위한 공중이용시설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세부 지침은 현실적으로 명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