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비슷한 건 안 하기로 하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난 1일 오후 출입기자들을 만나 윤석열 대통령의 첫 여름휴가(1~5일) 계획에 대해 “댁에서 푹 쉬시고 주무시고 산보도 하고 영화도 보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오전 브리핑 땐 “서울에 머물며 정국 구상을 할 것”이라고 했는데 오후에 ‘휴식’에 방점을 찍으면서 다시 말한 것이다. 직후, 정치권에선 “대통령이 일 안 하겠다는 브리핑은 처음 본다”는 등 여러 말이 나왔다.
이후 윤 대통령은 휴가 중 깜짝 연극 관람을 했는데, 이것 역시 정치적 공방의 소재가 됐다. 윤 대통령 부부는 지난 3일 대학로 한 소극장에서 연극 ‘2호선 세입자’를 관람한 뒤 배우들과 뒤풀이를 했다. 대통령실이 공개한 뒤풀이 사진엔 맥주와 소주를 마시는 모습도 포함됐다.
이를 두고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은 안 만나면서 연극을 보느냐”(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는 지적이 나오며 역시 논란을 불렀다.
이에 대통령실에선 “국회의장이 파트너인데 윤 대통령이 휴가 중에 만나는 것은 적절치 않다”(강승규 시민사회수석)는 반박이 나왔다. 익명을 원한 한 참모는 “윤 대통령의 첫 여름휴가가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이슈 거리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주로 ‘7월 말 8월 초’에 여름휴가를 갔다. 특히 취임 후 첫 휴가는 재충전과 함께 정국 구상을 가다듬고 중요 결정을 하는 계기가 되곤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영삼(YS) 전 대통령이다. YS는 청남대에서 첫 여름휴가를 마친 직후인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제법을 전격 발표해 ‘청남대 구상’이란 말을 남겼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1998년 IMF 충격으로 첫 휴가를 반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각각 대전과 진해에 있는 군 휴양지에서 첫 휴가를 보냈다.
휴가 일정과 행보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첫 휴가를 경남 거제 인근 저도에서 보내며 모래사장에 ‘저도의 추억’이란 글씨를 적고 있는 사진을 SNS에 올렸다. 30여 년 전 이곳에 함께 왔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떠올리며 인간적인 이미지를 부각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휴가 직후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4명을 한꺼번에 교체했다.
반면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여름 첫 휴가를 강원도 평창에서 시작했다. '2018 평창 겨울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현장 상황을 점검하고 홍보하는 효과를 노렸다.
‘휴가 징크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역대 대통령들은 휴가와 함께 찾아온 악재에 고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탄핵 정국, 2006년 북한 미사일 발사, 2007년 한국인 피랍사건 등으로 세 차례나 '관저 휴가'를 보냈다. 2014년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로 청와대를 지킨 박근혜 전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휴가를 떠나기에는 마음에 여유로움이 찾아들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 시간 동안 남아있는 많은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 역시 출발 하루 전날인 2017년 7월 28일 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휴가가 연기됐다. 이후, 2019년엔 일본의 수출 규제로, 2020년은 폭우, 2021년 코로나 19 확산으로 휴가를 보류했다.
80타 골프 실력을 자랑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골프를, 김영삼 전 대통령은 매일 2km 정도 되는 조깅 코스를 뛰었다. 다리가 불편했던 DJ는 독서와 산책, 서예를 즐겼고, 테니스를 좋아했던 MB는 휴가지에서도 라켓을 놓지 않았다.
유난히 휴가 복이 없던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은 관저나 휴가지에서 독서를 했다. 다독가인 둘은 휴가 때마다 추천 도서를 소개했는데, 국정철학과 정치적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전달해 ‘독서 정치’라 불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