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대학로 한 극장에서 연극 '2호선 세입자'를 관람한 뒤 출연진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휴가 중에 연극계 어려운 사정을 청취하려 현장을 방문했다. 윤 대통령은 이르면 이번 주말 사면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사진 대통령실
왕조의 흔적이기도 한 특별사면권은 대통령만이 가지는 권한이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은 국민여론과 지지율 등 제반 여건을 두루 고려해 사면권을 선택적이고 제한적으로 행사해왔다. 취임 후 첫 광복절 특별사면을 앞둔 윤석열 대통령도 같은 고민을 마주하고 있다. 특히 20%대까지 떨어진 지지율은 고민의 깊이를 더 한다. 대통령실 핵심관계자는 “사면에서도 당장의 지지율보다 원칙을 쫓는 것이 대통령의 방식”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직 이명박 전 대통령(MB)과 김경수 전 경남지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주요 사면 대상에 대한 최종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다. 여권 관계자는 “주요 인물의 경우 워낙 의견 제시가 많아 다방면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이 생각하는 사면 결정의 데드라인은 일단 9일이다. 이날 법무부의 사면심사위원회가(사면위) 열릴 가능성이 크다. 광복절 특사 발표를 위해선 12일 임시국무회의가 개최돼야 한다. 늦어도 그 전날까진 사면안이 심사위에서 확정돼야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을 결정할 땐 박범계 당시 법무부 장관은 사면위 종료 직전 박 전 대통령 안건을 들고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심사위 전날까지 대통령에게 계속 사면 보고가 들어갈 예정”이라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에 포함될 수 있을까. 사진은 지난 2021년 2월 10일 서울대학교병원에서 기저질환 치료를 마친 뒤 퇴원하던 모습. 연합뉴스
여권에선 이번 사면의 방점이 경제살리기와 대통합에 찍혀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광복절 사면은 대통합 사면이 될 것이라 예측 가능하다”며 “국민 통합을 위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면이 필요하다”고 밝혀왔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지난달 27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참석해 경제 살리기 차원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특별사면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여당의 한 재선 의원은 “윤 대통령이 수사하고 구속했던 이들을 사면하는 것이 대통합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사면에 공개적 입장을 밝히진 않았지만 내부적으론 이런 제안에 공감한다는 입장이었다. 윤 대통령도 지난 6월과 7월 도어스테핑에서 “이십몇년을 수감 생활하게 하는 건 안 맞지 않느냐(6.9)”“국정에는 국민의 정서가 고려돼야 하지만 너무 정서만 보면 현재에 치중하는 판단이 될 수가 있다(7.22)”며 사실상 MB의 사면을 예고했다. 여기에 어려운 경제 상황이 맞물리며 이 전 부회장과 신 회장의 복권도 상수처럼 여겨져왔다.
지난해 7월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된 김경수 전 경남도지 마산구 창원교도소 앞에서 재수감 입장을 밝히고 있는 모습. 뉴스1
문제는 지지율이다. 6월 MB의 사면을 언급할 당시 갤럽조사를 기준으로 50%대를 기록했던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현재 28%까지 떨어졌다. 최근 당내 갈등과 학제개편 논란 등 악제가 겹겹이 쌓이며 반전의 모멘텀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특히 반대 여론이 높은 MB와 전통적 지지층이 거세게 반발하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에 대한 사면을 두고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김 전 지사가 이달 가석방 대상에서 제외돼 특사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단 보도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최소 형기의 80%는 채워야 가석방 대상에 오를 수 있다”며 “가석방과 특사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취임 후 첫 특별사면에 자신이 과거 탄원서까지 써줬던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포함하지 않았다. 여론을 고려한 조치였다.
이에 정치권에선 취임 후 첫 사면(취임 100일)에선 생계형 사범에 집중한 뒤 두번째 사면(광복절 특사)에서 재벌 기업인들을 대거 풀어줬던 ‘MB모델’을 조심스레 거론하는 목소리도 있다. 신년 특사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 출신인 한 여당 의원은 “윤 대통령의 스타일을 보면 당장의 지지율에 자신이 내린 결정을 바꾸는 스타일이 아니다”며 “당장의 숫자보다는 자신의 고려하는 원칙에 따라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