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미·중, 대만해협 치킨 게임 안 된다

중앙일보

입력 2022.08.0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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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펠로시(왼쪽) 미 하원의장이 1일 아시아순방 첫 방문국인 싱가포르에 도착,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2일 대만 차이잉원 총통을 면담하고 입법원을 방문한다. [AP=연합뉴스]

펠로시 하원의장 대만 방문 놓고 격돌

양안 불안정, 한반도와 동북아에 영향

대만해협을 둘러싼 미·중 간 기싸움이 예사롭지 않다. 군용기를 타고 아시아 순방길에 나선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오늘 차이잉원 대만 총통을 만난다. 며칠 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대만 문제와 관련해 “외부 세력 간섭을 배격한다. 불장난하면 필히 불에 타 죽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이런 격한 반발을 뒤로하고 강행하는 외교다. 어제 중국은 “결연하고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외교부), “펠로시가 화약 냄새 속에 방문한다”(환구시보)며 전방위 경고를 보냈다. ‘항모 킬러’로 불리는 극초음속 탄도미사일 발사 장면을 공개하고, 군용기 수 대를 대만해협 중간선까지 출동시키기도 했다.
 
백악관은 “‘하나의 중국’ 정책은 그대로이고,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공격적 군사 활동을 늘리기 위한 구실로 사용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남중국해와 첨단기술, 무역, 민주주의 가치를 놓고 대립해 온 미·중이 대만해협에서 다시 갈등을 키우는 양상이다. 1996년 3차 대만해협 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이란 점이 심히 우려스럽다.
 
미 국가 권력 서열 3위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은 처음이 아니다. 1997년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의 방문 때는 중국 외교부가 항의는 했지만 양국 갈등으로 비화하진 않았다. 당시 중국 외교 기조는 ‘도광양회(韜光養晦·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름)’였고, 대만의 정치 상황도 지금과는 달랐다. 1991년 베이징을 찾은 펠로시가 천안문 광장에서 ‘중국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에게’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드는 등 중국의 인권·민주주의에 대해 목소리를 내왔기에 중국이 더 예민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갈등은 25년 사이 군사·경제적 굴기(崛起)에 성공한 중국, 달라진 미·중 역학 관계, 그것이 동북아에 미칠 영향 등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문제는 이런 강 대 강 국면이 지속될 것이란 점이다. 무력까지 언급하며 대만 통일을 과업으로 삼은 시 주석은 10월께 열릴 3차 공산당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지으려 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대만 문제에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시 주석과 ‘반중(反中) 동맹까지 결성하는 판에 위협에 굴복할 수 없는’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강한 외교 수사와 정책을 구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대한 중국 전투기의 대규모 진입 등 도발, 미국의 대응이 위태롭게 전개될 수도 있다.


양안 세력 균형의 불안정성은 주한미군 및 주일미군의 활동과 직결되고, 이는 한반도와 동북아 전체 평화 안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7차 핵실험 준비를 마치고 전술핵 사용을 위협하는 북한에도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치킨 게임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