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한용섭의 한반도평화워치

[한용섭의 한반도평화워치] 북·중이 6·25 때 유엔군과 싸운 사실 숨기는 까닭

중앙일보

입력 2022.07.26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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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69주년과 북·중의 역사 왜곡

한용섭 우리국익가치연구회 대표, 전 국방대 부총장

내일(27일)은 정전협정 체결 69주년 기념일이다. 잊힌 지 오래되었지만, 정전협정 중 사문화된 중요 조항이 있다. 정전협정 13항은 “남북한의 신무기 증강은 허용되지 않고 단지 정전협정 체결 당시에 존재하고 있던 무기들을 교체하는 것만 허용된다. 무기를 교체할 때에는 군사정전위에 보고하고, 그 보고사항과 실제 교체 상황이 일치하는지를 중립국 감독위원회의 감시소조가 현장 사찰로 확인한다”고 명시했다.
 
중립국 감독위원회는 유엔사령부 쪽에서 스위스·스웨덴, 북한 쪽에서 폴란드·체코가 임명되었다. 그런데 출발부터 말로만 중립국감독위원회였지, 중립성이 지켜질 수 없었다. 폴란드·체코는 공산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북한 편이었다. 반면 스웨덴·스위스는 진짜 중립국이었다. 남한에 들여오는 무기는 군사정전위에 신고가 다 되었고, 중립국 감시소조가 사찰을 제대로 했다. 1955년 스웨덴 감시소조가 “남한은 전투기 631대의 반입 사실을 신고하고 사찰을 잘 받았는데,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수백 기의 전투기를 반입했으나 하나도 신고하지 않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 후 북한 측 위반 사항이 너무 많고 신고도 하지 않아, 남북한 간 군사력 균형이 북한 쪽에 유리하게 변화했다면서 유엔사에서 1957년 말 이 조항의 무효화를 선언했다.
 
그 후 35년이 지난 뒤 남북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북한, 미국과 북한 간에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사찰을 협상할 때 북한이 정전협정에서 신고하지 않고 몰래 군비를 증강했던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고, 북한의 핵시설 사찰에서 이런 위반 사항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정전협정 협상과 서명자는 유엔사령부와 북한·중국임에도
북·중은 6·25를 미국·이승만의 침략 전쟁이라고 왜곡 주장
동북아 자유·평화 위해 6·25 역사 왜곡과 선전선동 그만둬야
한국은 왜곡 바로잡고 국력 기르면서 민주주의 연대 강화해야
  
북한, 정전협정 어기고 군비 증강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유엔기를 앞에 두고 정전협정문서에 서명하는 유엔군 수석대표 윌리엄 해리슨 미군 중장(왼쪽 가운데)과 북한인공기를 앞에 두고 서명하는 중·조 연합군 수석대표 남일 북한군 대장(오른쪽 가운데). [사진 김명호]

92년 남북한 핵 협상 때 사찰 조항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버티던 북한 때문에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위기에 처했다. 93년 1월에 IAEA가 북한이 IAEA에 신고하지 않았던 시설에서 재처리를 통해 플루토늄 원자폭탄을 개발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특별사찰을 결의하였다. 당시 무함마드 엘바라디 IAEA 사무국장(후에 사무총장이 됨)이 사찰단을 꾸려 북한에 특별사찰을 수용하라고 설득하기 위해 김정일을 만나러 갔다. 엘바라디 일행이 북한 방문 후 빈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유엔군축연구소 연구원이던 필자는 엘바라디를 만나러 빈에 갔다. 엘바라디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김정일을 만났는데, 김정일은 개혁개방을 선호하는 지도자로 보였다. 북한이 개혁 개방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와 척을 지면 안 되기 때문에 특별사찰을 받아들일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필자는 “북한은 정전협정에 규정되어 있던 중립국 감독위원회의 사찰을 전혀 수용하지 않았던 역사적 기록이 있고, 북한이 굶주리면서 핵을 개발했는데 공짜로 특별사찰을 받아들일 리가 없으니 다시 생각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로부터 11일 뒤인 3월 12일 북한은 IAEA의 특별사찰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했다.


북한, 폴란드·체코 자유화에 중립국 무효화
 
많은 사람이 북한이 정전협정의 중요 조항을 안 지켰다는 사실을 잊었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운명과 정책을 맡은 책임자들은 북한이 국제규범인 정전협정을 위반한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기회 있을 때마다 상기시켜서 국제규범을 준수하도록 만들 책임이 우리 지도층에 있다. 북한은 53년이나 지난 지금도 김씨 왕조가 정권을 승계하고 있기 때문에 김일성 때의 국제규범 위반 사실을 김정은에게 물을 수 있다.
 
정전협정에서 중립국 감독위원회의 ‘중립국’이라고 공산 진영이 주장했던 폴란드·체코가 탈냉전 후 옛 소련의 압제로부터 벗어나 자유 진영에 속하게 되자 북한은 정전협정의 중립국 조항 무효화를 선언해 버리고 말았다.
 
탈냉전 이후 30년이 지나 러시아가 그동안 축적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반인륜적 살상과 주권 침해를 자행하고, 유엔이 정한 국제 평화 질서를 흔들고 있다. 러시아에 강력한 경고를 하고 유럽의 자유와 안보를 확실하게 만들기 위해 2차 대전 후 지금까지 중립국으로 있었던 스웨덴·핀란드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을 신청해 허용되었다.
 
스웨덴은 정전협정의 중립국 감독국을 69년이나 해왔다. 때로는 “중립국으로서 남북한 어느 편도 들지 않겠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서운하게 한 적도 있다. 핀란드는 냉전기 미·소 대립 속에서도 중립적 지위에서 자유 진영 대 공산 진영 간 긴장을 해소하고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유럽안보협력회의를 3년간 유치하여 75년 헬싱키 최종선언에 합의하고, 유럽 화해와 협력의 메카로 활동했다. 그러나 푸틴의 야만적인 이웃 국가 침공의 만행을 보고 “국제법과 주권과 인권을 제대로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따끔한 경고를 하기 위해 중립국 지위를 버리고 나토 가입을 추진하게 되었다. 핀란드 지성인들은 2차 세계대전 후 처음으로 “전 핀란드 국민이 안보와 평화와 번영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대오각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북·중 “6·25는 미 제국주의자와의 전쟁”
 
스웨덴·핀란드의 나토 가입 추진과 지난달 나토 정상회의에 윤석열 대통령이 참가한 사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중국과 북한에서 나온다. 그들의 비난에는 상투적 문구가 발견된다. 북·중은 “동맹을 추구하는 것은 냉전적 사고방식이고, 냉전 체제의 유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틈만 있으면 6·25전쟁을 ‘미 제국주의자와 북한 간의 전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6·25 남침 직후부터 “미 제국주의자가 이승만과 함께 북침했기 때문에 부득이 남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는 왜곡된 주장을 만들어 지금까지 세계에 선전 선동하고 있다.
 
정전협정의 협상과 서명자는 정확하게 유엔사와 북한·중국이다. 그런데 21세기 세계 2대 강대국이 된 중국 초중고·대학 교과서에는 “6·25는 미 제국주의자와의 전쟁”이라고 적혀 있다. 초중고·대학의 정치·역사 교과서에는 ‘유엔군’이라는 명칭을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중국은 6·25 때 유엔군과 싸웠다고 하면 그 후에 얻은 유엔 회원국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라는 법적 지위와 모순되기 때문에 6·25에 참전한 중국 군대를 인민해방군 대신 항미원조지원군이라고 부르고 있다.
 
북한이 스탈린·마오쩌둥과 공모해 남침했다는 사실은 세계가 다 알고 있다. 유엔에서 북한의 남침은 “유엔 헌장의 평화 파괴 행위”라고 규정됐다. 유엔은 북한 침략군 격퇴를 위해 회원국들의 파병 지원을 요청해 16개국이 군대를, 6개국이 의료·병참을 지원했다. 이 사실은 국제법적인 일로써 북한·중국이 부정하려고 해도 부정될 수 없다. 그런데 북한은 6·25 개시 7일 후 서울을 점령하고 펴낸 조선인민보 등 신문에서 “미 제국주의자와 이승만의 무력 침공에 대응하여 부득이하게 서울로 진격했다”며 사실을 왜곡하고 선전선동을 해왔다.
  
북·중, 유엔사 해체 주장
 
지구상에 6·25를 미 제국주의자와 이승만이 침략한 전쟁이라고 주장하는 나라는 북한·중국밖에 없다. 그들은 유엔사를 해체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했다. 유엔사가 없어지면 그들의 6·25 역사 왜곡이 더 편해질지도 모른다.
 
옛 소련이 붕괴한 후 소련 압제에 시달렸던 폴란드·체코가 자유와 번영을 확보하기 위해 나토에 가입하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77년간 중립국 지위를 유지했던 스웨덴·핀란드가 자유와 인권·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집단방위기구인 나토에 가입함으로써 유럽은 다시 자유 세계 대 권위주의 러시아와 대립하는 신냉전으로 들어가고 있다.
 
정전협정 69주년을 맞아 동북아에서 모든 국가가 자유와 평화·번영을 함께 누리려고 하면 먼저 북한·중국이 6·25전쟁에 대한 역사 왜곡과 냉전 이데올로기적 선전 선동을 하루빨리 그만둬야 한다. 우리는 인내를 갖고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중국의 역사 왜곡과 국제규범 위반을 교정해야 한다. 이와 함께 국력을 기르고 자유 세계와의 연대를 굳건히 해나가야 한다.
 
한용섭 우리국익가치연구회 대표, 전 국방대 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