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몽의 쓴맛에 민감한 사람이 있고 IPA 맥주의 쓴맛에 민감한 사람이 있다. 요즘 인기가 상승 중인 제로칼로리 음료를 마시고 나서도 어떤 사람은 쓴맛을 느낀다. 유전적으로 혀의 쓴맛 수용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설탕은 단맛 수용체만을 자극하지만 사카린·아스파탐 같은 감미료는 단맛 수용체에 더해 쓴맛 수용체와도 결합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쓴맛 수용체는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제로칼로리 음료를 마시면 단맛 뒤에 쓴맛이 남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달콤하게만 느껴질 수 있다는 거다.
어린이가 채소를 싫어하는 현상도 쓴맛 때문이다. 이제 막 기어 다니기 시작한 유아가 만약 쓴맛에 둔감하다면 무엇이든 입에 넣고 삼킬 위험이 있다. 집이 아닌 들판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결과는 더 끔찍하다. 특히 슈퍼테이스터로 불리는 일부 사람은 쓴맛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이들은 혀에 버섯 모양 돌기가 많아서 맛을 더 강하게 느낀다. 달면 더 달고 시면 더 시고 쓰면 더 쓰다.
이런 현상을 처음 발견하고 슈퍼테이스터란 이름을 붙인 심리학자 린다 바토슉에 따르면 슈퍼테이스터는 전체 인구의 25% 정도이다. 이들은 채소를 싫어하고 편식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렇게 미각이 민감한 사람이라도 새로운 음식을 탐험하길 좋아하는 성향이 있다면 다르다. 맛이 자극적이거나 쓴맛이 나더라도 도전을 반복하면 그 음식을 즐기게 된다.
쓴맛은 다양하다. 옆자리에 앉은 미식가가 느끼는 쓴맛을 나는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남들은 다 좋아하는 음식을 나는 쓰다고 싫어할 수도 있다. 우리는 각자 다르게 세상을 감각한다. 쓴맛은 말한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현실로 받아들이라고.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