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리엔 '책의 정원'이 있다…가족 삶의 둥지서 문화를 키우다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중앙일보

입력 2022.07.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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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독자 서비스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여러분의 ‘인생 사진’을 찍어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인연에 담긴 사연을 보내 주세요.  
가족, 친구, 동료, 연인 등에 얽힌 어떠한 사연도 좋습니다.
아무리 소소한 사연도 귀하게 모시겠습니다.
아울러 지인을 추천해도 좋습니다.  
추천한 지인에게 ‘인생 사진’이 남다른 선물이 될 겁니다.  
 
‘인생 사진’은 대형 액자로 만들어 선물해드립니다.
아울러 사연과 사진을 중앙일보 사이트로 소개해 드립니다.
사연 보낼 곳: https://bbs.joongang.co.kr/lifepicture
              photostory@joongang.co.kr  
 
 

변광섭씨가 가장 좋아하는 천장 서까래 아래 섰습니다. 그는 대들보에 '아버지가 지은 집 아들이 고쳐 쓰다. 아름다움이 물결치는 공간을 꿈꾸며'라는 상량문을 썼습니다. 이 문구가 바로 이 집을 통해 그가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아! 아버지.  


붉게 빛나는 처마를 보며, 그날의 일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빛바랜 상량문을 올려다보며 눈물을 훔쳤다. 엄마의 다듬잇돌과 장독대 옆 골담초 앞에서는 가슴이 먹먹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울컥울컥 오르락내리락했다.
 
지난해 봄부터 8개월 넘게 집을 고치는 일에 매진했다. 이틀에 한 번씩 비가 오면서 애를 태우더니 여름이 시작되면서부터는 마른장마와 무더위에 모두가 기진했다. 뒤늦게 찾아온 가을장마는 새집을 통째로 삼킬 것 같아 여러 날 잠을 설쳤다.  
 
괜한 짓 했다며 후회를 한 적도 있었다. 새로 지으면 될 것을 왜 고생 사서 하느냐며 핀잔주는 사람도 있었다. 십 원짜리까지 탈탈 털었으니 앞으로의 살길이 막막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다듬어 놓고 보니 마음이 후련했다. 아버지가 지은 집 아들이 고쳐 쓰겠다는 나의 다짐이 비소로 이루어졌다. 
 
그동안 나는 지역과 전국의 문화 현장에서 수많은 일을 도모했지만 이렇게 나를 위해 투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순전히 내가 해야 할 사회적 책무 앞에서 미친 듯이 일만 했을 뿐이다. 그때 배우고 익힌 것들을, 그때 다짐하고 결의한 맹세를 지금 실천에 옮긴 것이다.  
 
공간이 사라지면 역사도 사라지고 사랑도 사라진다. 건축은 그 속에서 펼쳐지는 삶에 의해 완성된다. 공간은 또다시 우리를 만든다.  
 
그리운 것은 모두 고향에 있다. 그러니 저마다의 상처를 보듬고 풍경을 담으며 새로운 희망을 담자고 웅변하지 않았던가.
 
나는 아버지의 땅을 딛고, 엄마의 가슴을 치며 다시 태어났다. 책으로 가득한 풍경을 만드는 일이 시작되었다. 예술의 향기가 솔솔 피어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더불어 삶의 여백을 찾고 즐기는 곳으로 가꾸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작지만 소소한 풍경이 더욱 아름답게 물결칠 것이다.  
 
아버지는 우리 가족의 삶의 둥지를 지었지만, 아들인 나는 문화가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책이 있고, 그림이 있으며, 문화로 가득한 풍경이 있도록 했다.  
 
바로 앞에 세종대왕 초정행궁이있다. 어떤 이는 초정행궁보다 더 값진 곳이라며 칭찬을 했다. 천장의 붉게 빛나는 서까래를 보면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책과 예술작품 앞에서 가슴이 먹먹했다는 사람도 있다. 삶의 향기가 무엇인지, 문화가 있는 집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제 사랑할 시간만 남아있다. 뜨거운 눈물이 그랬다. 나의 삶이 더욱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와 남을 진정으로 사랑한 적이 있는지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았다.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이제는 진심을 다하고 용기를 다할 것이다. 문화와 예술을 통해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 말이다.  
 
이곳에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문화예술의 향연 가득한 풍경을 빚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춤을 추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풍경을 빚을 것이다.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초정리에서 변광섭
 

그가 툇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세상이 큰 유리창에도 맺힙니다. 그 유리창엔 앞산이 들어오고, 초정행궁도 들어와 있습니다. 그가 예서 경계를 허물었기에 풍경마저 이 집을 드나듭니다.

 
초정리에 도착하자마자 집 바깥부터 둘러봤습니다. 너른 정원에 빨간 지붕 집 한 채가 덩그러니 소담했습니다.
 
옛집 처마에 덧댄 너른 처마만큼 너른 툇마루에도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집 뒤로 도니 벽을 파내 만든 책장이 눈에 확 띄었습니다. 그 책장으로 인해 가히 책을 위한 집이란 걸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벽을 파내 책장을 만들고, 빈 벽엔 숟가락으로 만든 장식품을 걸었습니다. 이렇듯 빈 벽에도 변광섭씨가 품은 뜻이 배어 있습니다.

게다가 그 벽에 걸린 액자가 독특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숟가락입니다. 오늘날의 숟가락과 달랐습니다. 밥을 담는 부분이 유난히 큰 숟가락이었습니다.
 
변광섭씨에게 대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할머니 때부터 우리 가족들이 사용하던 숟가락으로 액자로 만들었습니다. 숟가락이 유난히 큰 건 우리가 농경사회를 살았다는 걸 알려줍니다. 눈만 뜨면 일을 했고 많이 먹어도 늘 배고팠던 시절이니까요.”
 
그는 장독대며, 문짝이며 뭣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것들을 곳곳에 두었습니다.
 

변광섭씨는 마을을 가꾸는 크리에이터가 필요한 시대라고 말합니다. 마을이 황폐화되어가는 현실에서 마을에 숨어 있는 역사, 문화, 자연, 사람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을 하거나, 아카이브 하거나, 관광 콘텐트로 만드는 크리에이터가 미래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젊은이들이 시골에 정착하고, 나아가 문화적인 활동을 하는 기회의 장을 펼칠 수 있으니까요. 그는 ‘책의 정원’을 만드는 과정과 여기에 담긴 철학을『아버지가 지은 집 아들이 고쳐 쓰다, 책의 정원 초정리에서』라는 책으로 엮었습니다. 마을을 가꾸는 크리에이터가 더 늘어나길 바라면서요.

집 안으로 드니 책 냄새 물씬합니다. 거실이며 방이며 책이 한 그 득입니다. 그는 예서 동네 책방을 열 작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시민들과 관련된 문화적인 프로그램까지 운영해볼 계획을 꾸리고 있는 겁니다.
 
이 집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천장 서까래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쓴 상량문도 그대로 있습니다. 이어 그가 쓴 상량문도 있습니다. 두 상량문의 다른 점은 한문과 한글이라는 겁니다.
 

대들보에 아버지와 아들이 쓴 상량문이 보입니다. 이는 아버지가 지은 집을 고쳐 쓰겠다는 아들의 다짐이 비로소 이루어졌다는 의미입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렇습니다.
“한문으로 된 거는 아버지, 한글로 된 거는 제가 쓴 거죠. 아마 같이 있는 경우는 우리나라에 거의 없을 거예요. 여기 바로 앞이 세종대왕이 다녀가신 초정행궁인데 한문으로 넣기 그래서 한글로 담은 겁니다.”
 
결국 아버지는 삶의 둥지를 만들었고, 아들은 그 둥지를 문화가 움트는 터로 만들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초정리 약수는 물 좋기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세종대왕이 다녀간 이유 또한 그 약수 때문이고요. 세종대왕이 머물었던 행궁과 이웃한 마당에서 나오는 물이니 이 물에 대한 변광섭씨의 자부심 또한 차고 넘칩니다.

그가 느끼는 아버지에 대한 의미는 각별했습니다.
“아버지께 물려받은 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생물학적 유전자고 또 하나는 문화적 유전자입니다. 집 앞이 바로 초정행궁인데 우리 집 마당 삼아 놀았습니다. 마당 이름이 탕마당입니다. 탕이 있었던 마당이라는 의미죠. 늘 탕마당에서 놀고, 탕마당에서 물 마시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세종대왕이 다녀갔던 곳임을 늘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제 문화적 상상력을 키워준 겁니다. 결국 세종대왕을 공부하고 문학을 전공하게 되었죠.”
 

서울에서 고 이어령 전 장관의 장례식을 할 때, 변광섭씨는 이 마당에서 이 장관을 기리는 예식을 했습니다. 100여명 시민이 모인 가운데서 춤과 음악과 노래로 이 장관의 떠남을 달랬습니다. 이어 참가한 이들이 한마디씩 쓴 '내 인생의 이어령'이란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엮기도 했습니다.

그의 문화적 유전자는 어어령 선생을 만나면서 꽃을 피웠습니다.
“청주에서 ‘동아시아 문화도시’라는 사업을 제가 기획했죠. 당시 ‘오고초려’하여 이어령 선생을 위원장으로 모셨습니다. 그렇게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이어령 선생은 그에게 마지막 유지를 남기고 떠나셨습니다. 그것은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중 ‘이어령의 문화 이벤트’를 출간하여 맥을 이으라는 유지입니다.
 

돈이 없어서 담장을 쌓다 말았냐고 묻는 사람도 더러 있다고 합니다. ″오가는 사람들이 그냥 눈길로라도 오가게끔 하려고 담장을 쌓지 않았다″는 게 그의 답입니다.

사실 그가 이 집에서 ‘책의 정원’을 꿈꾸는 것도 이 뜻과 통합니다.
다 허물어져 가던 시골집을, 주머니란 주머니를 다 털어 고쳐내고, 사람들이 오가게끔 문을 열어 둔 이유인 겁니다.
 
“책의 정원을 만들었는데 여기를 찾은 사람들이 대체로 책은 안 읽고 구경만 하더라고요. 그래도 책방을 만들어 놓으면 어떻게든 읽지 않겠습니까. 사실 집이란 게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유지되는 것이니 오가는 것만으로 문화의 명맥은 이어질 겁니다.”
 
마침 마당에 누군가가 꽃과 나무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것들을 정원 여기저기에 심었습니다. 변광섭씨의 가족인가 하여 여쭈었습니다.
“아니에요. 마당이 열려있으니 아무나 와서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는 겁니다.”
 

이 마당 또한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누구나 와서 꽃을 가꾸고 나무를 심고 물을 줘도 되는 겁니다. 이렇듯 그는 너와 나의 경계가 없는 공간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집은 네 것, 내 것 경계가 없는 겁니다.
초정리에서 그가 꾸는 꿈이 바로 이 풍경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