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조용한 목격자’ 가정폭력 노출 아동…치유 급하다

중앙일보

입력 2022.07.1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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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옹호실 팀장

“내가 못나서 맞는 건가? 아버지가 우리를 때릴 때마다 생각했어요.”
 
가정폭력피해자 보호시설에서 자립한 이 청년은 어린 시절 가정폭력 가해자인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고 폭력 피해도 입었다. 즉, 가정폭력에 노출됨과 동시에 아동학대를 당한 이중 학대 피해자다. 2019년 조사에 따르면 피해자 외 가해자가 폭력을 행사한 주요 인물로 ‘자녀’가 63.3%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가정 내 아동이 겪는 이중 학대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동의 경우, 직접적인 폭력이 아니더라도 가정폭력에 지속해서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초래할 수 있고 학교폭력 등 다른 형태의 폭력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이 이루어진다. 가정폭력 노출 아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개입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가정폭력 노출 아동에 대한 정부의 대응 체계가 미흡한 상황이다. 현재 여성가족부의 가정폭력 대응 체계와 보건복지부의 아동학대 대응 체계가 분절돼 있어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동 보호를 위한 합동 매뉴얼이나 협력체계가 구축돼 있지 않다. 경찰도 가정폭력 노출 아동에 대한 구체적인 개입이 포함된 수사 매뉴얼이 없다. 여성가족부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을 중심으로 지원하고 있어, 아동 중심 프로그램이나 예산 지원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다행히 ‘아동을 가정폭력에 노출하는 행위도 정서적 학대에 속한다’는 내용을 담은 개정된 아동복지법이 지난달 22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월드비전은 지난 5일, 이 법 개정에 앞장선 김미애 국회의원(국민의힘)과 함께 포럼을 열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모았다. 법 개정에 따라 앞으로 가정폭력 대응에 변화가 필요하다. 경찰은 가정폭력 현장에 아동이 있을 경우, 아동에 대한 가해자의 폭력 여부에 상관없이 이를 아동학대로 인지하고 그에 따른 조처를 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연계해 가정폭력피해자 보호시설 내 아동도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여성가족부와 협의해야 할 것이다.
 
가정폭력에 가장 취약한 대상은 아동이다. 더는 사회가 이들의 아픔을 간과하지 않도록 실제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고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동이 변화를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아이들의 마음속 상처는 누군가 들여다보지 않으면 볼 수도, 치유할 수도 없다. 이들을 향한 어른들의 따듯한 치유가 어서 시작되기를 기대한다.
 
이진영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옹호실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