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2.25% 시대…경기 둔화 우려에도 '닥치고 물가' 택했다

중앙일보

입력 2022.07.13 18:19

수정 2022.07.13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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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금리 인상은 ‘무딘 칼’을 휘두르는 것과 비슷하다. 물가를 올리는 요인만 제거하지 못하고, 경기 침체라는 부작용을 일으키기에 십상이다. 그만큼 가계와 기업 등 모든 경제 주체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정책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그래서 한국은행이 사상 처음으로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한 13일 이창용 한은 총재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면서 내린 결정”이라고 입을 뗐다. 빅스텝 배경을 설명하며 1970년대 오일쇼크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의 연평균 물가 상승률이 16%를 넘어서던 시기다.  
 

"유가 상승으로 촉발된 인플레이션으로부터 그 손실을 보상받기 위해 경제 주체가 가격과 임금을 서로 올리고 그 결과 다시 물가가 올라가는 상황이 반복되면 개별적으로는 합리적인 결정이더라도 고물가 상황이 고착돼 모두가 피해를 보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이러한 잘못을 반복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기준금리를 연 1.75%에서 2.25%로 0.5%포인트 인상했다. 한은의 첫 '빅스텝 인상'이자, 첫 3연속(4,5,7월) 인상 결정이다. 기준금리가 연 2.25%를 기록한 건 2014년 8월 이후 처음이다. 기준금리가 2%대 고지에 올라섰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날 금통위의 금리 인상 결정은 만장일치였다. 메시지도 명확했다. 경기 침체 우려를 감수하더라도 일단 치솟는 물가 잡기가 먼저였다.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6% 올랐다. 1998년 11월(6.8%) 이후 가장 높다. 이 총재는 “물가 상승의 속도도 빨라지고, 확산 정도도 광범위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경기 침체와 물가 사이에 애매한 저울질로는 기대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컸다. 6월 기대인플레이션도 3.9%로 전달보다 0.6%포인트 올랐다. 2012년 4월(3.9%) 이후 최고치이다. 물가 기대심리인 기대인플레이션은 임금과 상품 가격을 끌어올려 인플레이션을 장기간 끌고 가는 요인이다. 


이 총재는 “물가·임금 간 상호작용이 강화되면서 고물가 상황이 고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며 “기대 인플레이션을 꺾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빅스텝을 통해서 강하게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각국 중앙은행도 비슷한 이유로 강공을 펼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올렸고 호주·스위스·뉴질랜드 등도 빅스텝을 밟았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미국과의 기준금리 역전도 한은이 빅스텝을 밟게 한 요인이다. 이날 한은의 빅스텝으로 미국 기준금리(연 1.5~1.75%)와의 금리 차는 일단 상단 기준으로 0.5%포인트로 벌어졌다. 다만 시장의 전망대로 Fed가 오는 26~27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면, 상단 기준으로 금리 역전이 발생한다.   
 
이 총재는 “(금리) 역전 자체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최근 원화가치 하락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달러=1300원’ 시대도 장기화하고 있다. 한·미 기준금리 역전 폭이 커지거나 장기화하면 외국인 자본 유출 등으로 환율 변동성은 더 커질 수 있다. 원화가치가 하락하면, 유가가 떨어지더라도 수입물가는 내려오지 않을 수 있다.  
 
치솟는 물가를 잡기 전까지는 추가 금리 인상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날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문을 통해 “앞으로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추가 빅스텝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당분간 금리를 0.25%포인트씩 점진적으로 인상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인플레이션이 가속하거나 경기 둔화 정도가 예상보다 커진다면 정책 대응 시기와 폭도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금융권에서는 연말의 기준금리 수준을 연 2.75~3%로 전망하고 있다. 이 총재도 이에 대해 “합리적 전망”이라고 밝혔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남은 3차례 금통위(8·10·11월)에서 0.25%포인트씩 2~3차례 금리 인상을 해야 한다. 이 총재가 물가의 피크 아웃(정점 통과) 시기를 올해 3분기 말에서 4분기 초로 전망한 만큼, 올해 말까지는 금리 인상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은이 고강도 긴축에 나서며 경기 침체 우려는 더 커졌다. 무엇보다 부풀어 오른 민간 영역의 부채가 소비와 투자를 제약할 수 있다. 한은 추산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0.5%포인트 오를 경우 가계의 연간 이자 부담은 6조4000억원, 대출자 1인당 32만2000원 씩 늘어난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에 따르면 기업의 이자 부담도 연간 3조9000억원 늘어난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빅스텝으로 올해 가계 소비 지출 증가율을 0.5%포인트가량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한은도 이날 올해 경제성장률이 5월 전망치(2.7%)를 다소 하회할 수 있다는 전망을 했다. 코로나 19가 재유행할 경우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큰 폭으로 꺾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총재는 민간소비 침체 가능성에 대해 “민간 소비는 저에게도 큰 걱정”이라며 “방역 정책이 어떻게 될지에 따라서 소비가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이날 금리 인상에 코로나19가 확산돼 거리두기 등 방역 조치가 강화되는 걸 전제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