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2월 30일의 23명 집행 이후 한국에선 실제 사형이 이뤄지지 않았다. 2022년 7월 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형수는 59명이다. 사형수는 있으나 사형 집행은 없는 나라로 25년을 보냈다. 그동안 공식적으로 사형제도를 없애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헌법재판소는 오는 14일 관련 헌법소원 사건 공개변론 절차를 밟는다. 헌재는 앞서 두 차례(1996년, 2010년)엔 사형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 공개변론을 앞두고 사형제 존치를 옹호하는 전원책 변호사와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실장의 칼럼을 동시에 게재한다.
‘한국은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나라’가 지금의 상식이다. 천인공노할 흉악범에게도 좀처럼 사형을 선고하지 않는다. 사실상 사문화(死文化) 단계에 이르렀다. 헌재가 거듭 사형제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사형제가 폐지돼야 문명국이 된다'는 주장은 계속 나온다. 가장 열렬한 폐지론자는 종교단체다. 사라져야 할 야만이라며 사람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타인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느냐는 고상한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그동안 사형을 선고한 판사들은 모두 야만인이라는 말인가? 나는 이렇게 묻는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유영철 같은 자에게 사형 외에 어떤 합당한 형벌이 있다는 것인가?
흉악범 교화 가능성 믿지 않아
나는 롬브로소의 범죄인 생래설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흉악범의 잔인함은 상당 부분 타고난 것이며, 이는 어떤 방법으로도 교화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칼로 사람을 찌르는 짓을 대부분의 사람은 하지 못한다. 단지 벌을 받을까 두려워서가 아니다.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 그러나 사악하고 잔인한 자들은 다르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자신과 동등한 가치를 가진 인격체로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 잔인함은 어떤 교육으로도 순화되지 않는다. 그것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든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든 말이다. 결국 그런 ‘인간이 아닌’ 자들에게는 형벌에 대한 두려움만이 범죄로 나아가는 행동을 중지시키는 수단이 된다.
일본은 미국과 함께 문명국 가운데 사형제를 유지하는 드문 나라다. 그런데 1995년 ‘옴진리교 테러 사건’을 계기로 사형제 존폐 논쟁이 불붙었다. 일본 정부는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2018년 도쿄 지하철역에서 벌어진 사린가스 테러 관련자 13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국제앰네스티는 ‘13명의 사형 집행은 전에 없던 사태다. 이로 인해 일본 사회가 조금이라도 안전해졌다고 할 수 없다’는 성명을 냈다. 여기에 주제넘은 말까지 덧붙였다. ‘사형이 집행되면서 왜 사람들이 위험한 사상을 가진 교주에게 이끌렸는지 밝힐 수 없게 됐다.’
설득력 없는 사형 폐지론
둘째, 사형을 선고한 재판에 오류가 있을 경우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수사가 완벽할 수 없는 만큼 단 한 명이라고 무고한 사람의 생명권이 침해돼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판사들이 사형을 선고한 범죄자들은 이미 법정에서 어떤 오류도 존재하지 않을 정도의 엄격한 증명을 거친 끝에 사형을 선고받았다. 판사들은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하지 않기 위해 온갖 이유를 찾는다. 다시 말해 흉포한 범죄가 증명되고 사형을 선고하지 않을 아무런 이유를 찾지 못했을 때야 비로소 판사들은 사형을 선고한다. '무고한 사람 처형 가능성'은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 논리다.
셋째, 결코 범죄를 줄이는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극형에 처해질까봐 증거를 철저히 없애려고 더 심하게 범죄를 저지른다는 주장도 한다. 형벌의 목적은 범죄를 줄이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그리고 이 주장은 역으로 범죄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면 사형제를 존치시켜야 한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억울한 사형수? 현실엔 없어
중국을 비롯해 반(反) 민주주의 진영 국가 대부분은 아직 사형제를 유지한다. 이와 반대로 선진국, 특히 유럽연합(EU) 국가는 원칙적으로 사형을 금하고 있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서도 미국과 일본 등은 여전히 사형을 실시하고 있다. 연방 국가인 미국의 어떤 주는 사형을 금지하지만 연방대법원은 사형을 합법적인 형벌로 인정한다. 어쨌든 우리는 아직 형식적으로 사형제가 존치된 나라다.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한다고 문제 될 건 전혀 없다. 사형제 존치 여부는 어디까지나 내정의 문제다. 그런데도 앰네스티를 비롯한 인권단체는 마치 사형을 집행하면 당장 한국이 독재국가나 미개국으로 전락하는 것처럼 말한다. 문명국과 야만국을 가르는 경계선은 사형제 존치 여부가 아니라 사람들이 범죄 걱정 없이 평안하게 살 수 있도록 범죄를 제어하는지가 아닐까?